매일신문

[매일춘추]엽서에 담아 온 여행

나의 첫 번째 배낭여행의 목적지는 인도였는데, 그 첫 경험은 한마디로 말해 '무식'이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충동적으로 비행기 표를 예약해 놓고 출발 전까지 그 흔한 가이드북 한번 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수년도 넘게 지난 기억이지만, 아직도 델리에 도착했던 그 첫날밤의 강렬한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인드라 간디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현지시간으로 오후 10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었다. 공항에서 배낭여행자들은 빠하르 간지로 향한다는 정보만 듣고, 택시를 잡아탔다. 커다란 배낭을 차안으로 밀어 넣자, 어둑한 창밖의 풍경이 눈앞에 들어오고, 밖에서 불어오는 강렬하고 묘한 향냄새가 감지됐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방도 쉽게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침대 맡에 분홍색 등만이 켜지는 작은 방에서 하루를 지내기로 하고 짐을 풀었다. 그리곤 여행의 낯설음을 주체 못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한밤중에도 문을 연다는 옥상 카페에 찾아갔다. 따뜻한 짜이 한잔을 들이켜자, 그제야 여행 계획을 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배낭여행의 이런 단순 무식함 덕택(?)인지 이후 여러 번에 걸친 여행에서도 치밀함을 발휘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여행의 자잘한 일상들을 기록하는 일도, 유명한 관광지에 가서도 '나 여기 갔다 왔네'하는 식의 사진을 찍어 본 적도 없다. 그러니 여행의 아련한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미화되고 과장돼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도 버리지 못한 버릇이 하나 있으니, 어느 곳이든 꼭 우체국에 찾아가 편지를 쓰는 일이었다. 엽서에 갈겨쓴 단상들이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있을 때 가득히 쌓여 있곤 했다. 마지막 여행지에서 쓴 엽서는 가끔 나보다도 더 늦게 도착한다. 그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끄적댔던 글들인데, 후에 가만히 앉아 읊조리며 읽어 보면 또 다른 내가 그 안에 있다. 그렇게 사 모으고 보냈던 각국의 엽서들이 지금 예전 여행들을 회상하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된 것은 물론이다.

재미있는 점은 엽서들에 담긴 많은 내용들이 여행지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여행을 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여행이란 무엇인가' 또는 '왜 여행을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엽서에 가득 채워놓았다. 그건 삶을 살면서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곱씹어 볼 여유가 없는 우리네 모습을 반추하게 만든다. 어쩌면 생의 근원적인 고민은 이질적인 환경에 들어서서 오로지 자신만을 대면할 때 고개를 서서히 들이미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이 아니었으면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생각과 감정이 휘몰아치고, 여태 알지 못했던 행복과 두려움이 온 신경을 잠식해 온다. 그것이 바로 여행의 치명적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저 먼 타국의 작은 시골 우체국에서 여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언젠가 돌아갈 나를 위해 엽서를 쓰는 꿈을 꾼다.

방정란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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