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췌장암 말기 60대, 부양 힘든 90대 아버지 살해

"아버지를 제대로 모시지 못해서…. 이러나 저러나 불효이긴 마찬가지이겠지만요…."

지난 3일 밤 늦은 시간, 포항의 한 병원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조사를 받던 A(65·포항 남구)씨는 경찰관에게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A씨는 이날 오후 7시 30분쯤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93)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자신도 목매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상태에서 이웃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그러나 그는 경찰서로 가지 않고 이 병원 암센터로 이송됐다. 말기 췌장암 환자였기 때문이다.

A씨는 경찰 진술에서 "아버지와 함께 둘이서 어렵게 살아 왔으나 내 병이 악화되면서 더 이상 아버지를 모시기 어려워져 이 같은 일을 벌였다"고 했다. A씨는 아버지에게 술을 한 잔 권하며 입원이 불가피한 자신의 병세를 설명했으나 "나 혼자 두고 가면 어쩌란 말이냐. 차라리 나를 먼저 죽이고 네가 병원으로 가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고 후회했다.

A씨는 "솔직히 이대로 간다면 누가 먼저 죽을지 모를 정도였다. 나 없이 아흔이 넘은 아버지가 얼마나 더 버티겠느냐"면서 "아버지를 따라 죽지 못한 것이 더 큰 불효가 됐다"고 흐느꼈다고 경찰은 전했다. A씨의 병세는 존속살해라는 중죄 혐의에도 경찰서가 아닌 병원에 있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슬픈 일이다. 가난이 죄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며 "이런 경우가 흔히 말하는 '죄를 미워해야지, 사람을 미워할 수 없다'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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