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유로가 떠오르고 있다

새해 1월 1일로 유로가 출범한 지 10년을 맞게 된다. 그동안 유로를 사용하는 국가와 인구는 15개국, 3억2천만 명으로 늘어났다. 유로에 자국통화가치를 고정(pegging)하여 사용하는 실질적인 유로권 지역의 인구를 합하면 5억 명에 달한다. 1999년 도입된 후 유로는 연평균 20% 이상 유통량이 늘어나 2006년 말 현재 전 세계에서 6천100억 유로(당시 환율기준 8천20억 달러)에 달하여 달러를 제치고 가장 많이 통용되는 국제통화로 성장했다.

유로가 처음 탄생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은 유로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1998년 마스트리히트조약에서 정한 경제수렴조건(economic convergence criteria)이 너무 엄격하고 EU국가와 유로존 참여국가의 불일치가 유로의 장래를 불안하게 할 것으로 보았다.

2002년 1월 시중에서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1유로(€)는 1.17달러($)였으나 이후 가치가 속락하여 이듬해 10월 0.82달러까지 떨어지면서 유로의 장래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는 것으로 비쳐졌다. 특히 IT혁명이 일어난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은 평균 4%를 넘는 고성장을 지속하며 세계의 경제성장을 주도했기 때문에 유로 약세는 지속되었다. 그러나 2001년 IT 버블이 붕괴되면서 2002년부터 상황이 역전되어 전 세계 외환보유고에서 유로의 비율은 해마다 1.5% 이상 증가하여 달러와의 격차를 줄여가고 있다.

출범 10년 만에 유로는 기축통화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2006년 유로는 유통량에 이어 채권 표시 통화에서도 달러화를 제치고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였다. 2007년 현재 유로 표시 채권은 6조 달러 규모에 달하여 전 세계 채권 발행의 48.5%를 차지, 4조 달러에 머문 미국 달러 표시 채권인 32.1%를 크게 앞서고 있다.

유로가 단기간에 급속도로 확산된 것은 화폐 발행에 필요한 비용보다 액면가가 높은 데서 오는 시뇨리지(seigniorage)효과에서 기인한다. 그동안 미국은 달러를 찍으면 그만큼의 구매력이 고스란히 자국에 돌아가는 화폐발행차익을 거의 독점적으로 누려왔다. 그러나 유로가 등장하면서 달러가 누리던 시뇨리지효과는 위협적인 도전을 맞게 된다. 달러는 100달러권이 최고액 지폐이지만 유로는 500유로 지폐가 있어 약 6배 이상의 시뇨리지효과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518억 유로가 발행된 500유로 지폐는 2005년 950억 유로나 발행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8년에는 무려 1천300억 유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달러의 위상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실물경기를 살리기 위해 제로금리를 표방한 미국정부는 엄청난 달러를 공급할 예정이어서 달러 가치의 하락은 공식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유로의 부상은 쉽게 예견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세계경제가 과거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에서 미국, EU, 중국의 다극(multi-pillar)체제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되고 통화도 이에 따라 다극화시대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의 급부상에도 불구하고 유로의 고민도 없지 않다. 유로존에서는 단일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지만 회원국들이 처한 경제상황은 너무나 달라 독자적인 재정정책을 실시할 수 없다는 문제점은 남아 있다. 또한 유럽연합은 27개국으로 확대되었지만 유로존에는 12개국이 참여하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말미암아 최근 덴마크, 스웨덴에서는 유로존에 동참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게다가 영국경제의 자존심인 파운드가 폭락하면서 유로와 등가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영국, 덴마크, 스웨덴으로 하여금 유로를 도입하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어 유로존을 세계 금융중심지로 만들어 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2015년까지 슬로바키아(2009), 리투아니아(2010), 에스토니아(2011), 폴란드, 라트비아, 체코(2012), 헝가리(2013), 루마니아(2014), 불가리아(2015)가 연속적으로 가입을 할 예정으로 되어 있어 확대된 유로존의 위력은 커질 전망이다.

통화 다극시대가 되면 유로는 안정성 면에서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통화가 될 것이다. 유로는 전 세계 외환보유고에서는 30%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나 44개국에서 통용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김영우(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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