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살고 있는 다문화가정 2세들은 마땅히 돌봐줄 가족이 없어 집에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맞벌이 부부가 많기 때문이다. 방치하는 것만 해도 다행인지 모른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기도 하고, 심한 폭력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는 사례도 많다.
◆방치되는 아이들
대구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진우(가명·7)는 엄마와 손을 꼭 잡고 집에 가는 친구들이 세상에서 가장 부럽다. 맞벌이를 하는 아빠와 엄마는 진우를 마중 올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학교 놀이터에 혼자 남아 쓸쓸한 운동장을 거닐기 일쑤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길 하염없이 기다린다. 함께 놀 친구가 없고, 부모 대신 돌봐줄 친척도 없다. 방학이면 더욱 외톨이다. 진우는 "아빠 얼굴 본 지 너무 오래됐어요. 엄마는 식당에서 일하는데 밤 늦게 돌아와요"라고 울먹였다. 아빠는 전국 건설현장을 돌아다니고 베트남 출신인 엄마는 우리 말이 서툴러 대화가 되지 않는다.
도시의 다문화가정 2세들은 '나홀로 집'인 경우가 많다. 피부색, 생김새가 달라 따돌림을 당해 친구가 없고 경제적 궁핍으로 맞벌이 부모가 많아 양육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행정안전부가 조사한 다문화가정 자녀 양육에 관한 설문에 따르면 전체 612명의 응답자 중 '아이 혼자 지낸다'고 답한 부모가 7.2%나 됐다. 특히 필리핀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응답자 76명 중 14.5%가 '양육자 혹은 양육기관 없이 아이 혼자 지낸다'고 답했다.
대구 결혼이민자지원센터 한 관계자는 "도시 다문화 가정 2세들은 부모들이 함께 일터로 나가야 하는 탓에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에서 생계비, 양육비 등을 지원해 아이가 어릴 때 부모가 집에 있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학대까지 당한다
경북 구미시에 사는 상무(가명·4)는 엄마가 몽골인이다. 피부가 까맣고 말도 어눌해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는다. 유치원 미끄럼틀 한구석에서 모래를 만지며 혼자 논다.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누군가 다가오면 뒷걸음질하며 주위를 경계한다.
이상하게 여긴 담임교사 김모(37·여)씨가 상무를 병원에 데려가 진찰을 받아보니 상무는 '후천적 자폐증상'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방치와 학대가 원인이었다.
상무 어머니 A(31)씨는 한국 결혼생활과 일터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상무에게 풀었다. 쉬는 날에도 상무를 집에 혼자 남겨둔 채 외출했고, 화가 나면 상무가 지켜 보는 앞에서도 물건들을 집어던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다문화가정 2세들이 부모로부터 받는 학대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2006년 29건이던 것이 2007년에는 68건, 지난해(10월 기준)에는 87건으로 급격히 늘었다는 것. 대구경북에서도 지난 3년간 신고된 것만 18건이나 된다. 다문화가정 아동학대 발생률은 1천명 중 1명꼴로 일반 가정에 비해 2배 가까이 높다.
◆유아기 정신질환을 앓기도
2년전 필리핀에서 대구로 시집온 B(23)씨는 식당일을 마치고 고의로 늦게 퇴근하고 있다. 3교대 공장일을 하는 보수적인 남편이 강압적으로 그의 생활을 통제해 온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B씨는 "평소 좋아하는 치마와 반소매 옷도 입지 못하게 하는 남편이 밉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B씨의 이런 방어적인 자세가 막 젖을 뗀 딸아이의 정서에 큰 영향을 끼쳤다. 딸은 영양실조에 걸렸고 또래에 비해 신체발달 수준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어릴 때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공부는커녕 '소아기 자폐증' 등 정신질환을 앓을 확률이 높다고 경고했다.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장튀혀언(29)씨는 최근 병원을 찾았다가 청천벽력같은 말을 들었다. 아들 민상(가명·4)이가 후천성 자폐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던 것. 장씨는 "먹고살기 바빠 아이를 혼자 집에 내버려두는 경우가 많았고, 아이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할 때가 많았다"며 "아이의 병이 모두 내 탓 같다"며 울먹였다.
영남대학교병원 서완석 정신과 교수는 "유아기 성장에 중요한 것이 자극인데 유아기때 부모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 아이들이 제대로 자랄 수 없다"며 "부모 자식 간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아이들이 후천적으로 정신질환을 앓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교육 혜택은 차치하더라도 정신적인 문제를 걱정해야 할 정도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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