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다카에서의 부끄러운 하루

"지금 방글라데시에서 인도 콜카타로 돌아가기 위해 국제 버스를 예약하고 왔어. 티켓을 끊으러 가는 길, 오토릭샤 왈라는 미터기에 표시된 금액보다 몇 루피를 더 달라고 했지. 꽤 다사다난했던 나날을 보냈던지라 신경이 날카로워졌던 나는 그 나이 든 릭샤 왈라에게 버럭 화를 내고 말았어. 그러면서 혼자 '아, 이거 뭐야'라며 날카롭게 중얼거렸는데, 옆을 지나던 행인 한 명이 갑자기 한국말로 말을 걸어오는 거야. '저, 한국말 할 줄 알아요. 무슨 일이세요?'

한국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며, 그는 릭샤 왈라와의 흥정을 도와주곤 가 버렸어 …… 억지스러운 사건들로 곤혹함을 치르게 되는 게 당연한 것이 여행길이지만, 도대체 그렇게 화를 내며 짜증을 낼 만한 일이었을까. 여행은 세상이 넓다는 것과 함께 자기 자신의 치졸함을 이렇게 무방비로 드러내게 하는구나. 정말 부끄러운 하루다.-방글라데시 다카(Dacca)에서 보낸다."

짧지만 파란만장했던 방글라데시의 추억이 저 한쪽으로 멀어진다. 무비자로 입국해도 된다는 정보를 믿고 인도에서 방글라데시로 가는 버스를 탔지만, 국경에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관리국 사무소 직원의 말에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 국제전화를 걸어가며 확인한 결과, 국경 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타고 온 버스는 떠나 버린 지 오래였다. 방글라데시 수도인 다카로 가는 로컬 버스를 알아보러 국경 근처 작은 마을에 들어갔다. 영어도 잘 통하지 않았고, 버스 시간도 사람마다 이야기가 달랐다. 그때 다카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대학생 한 명이 선뜻 도와주겠다며 나섰다.

특별히 여행객이 모이는 지역이 없는 다카에서 갈 곳으로 정한 곳은 한국식당이었는데, 저녁 10시가 넘은 시간까지 이곳을 찾는 데 시간과 돈을 투자해 준 것도 그 고마운 청년이었다. 식당에 도착했는데, 그곳은 예상과 달리 고급 한국식당이었다. 식당 매니저는 꾀죄죄한 모습의 한국인 배낭여행자임을 확인하고 반갑게 맞아 주었지만, 그 청년은 현지인인 관계로 식당에 들어올 수 없다고 했다. 미안함도 잠시, 하루 종일 팽팽한 긴장으로 완전히 녹초가 된 나는 그 청년과 정신없이 헤어지고 말았었다.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훌쩍 떠난다 할지라도 또다시 사람의 숲 속에 놓이게 되는 게 여행이다. 나는 그 속에서 우호적인 경험보다 늘 적대적인 경험에만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은 아닐까. 이방인에게 선뜻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었던 그 많은 이들에게 인사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후회가 매번 여행마다 든다. 더 늦기 전에 이야기해야겠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방정란 여행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