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은 사막에 있는 '오아시스'다. 교과공부에 얽매여 학기 중에 옴짝달싹하지 못하던 학생들에겐 천금같은 시간이다. 평소 하고 싶었던 운동을 하거나 문화활동을 체험할 수 있고, 자신의 학력을 높이는데 집중 투자할 수도 있다. '문화체험의 전당', 대구학생문화센터를 찾았다. 이곳에선 '겨울휴가 예술체험교실'이란 이름으로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24개의 다양한 무료강좌가 열리고 있다. 방학을 알차게 보내려는 학생들의 열정은 추위를 녹일 정도이다.
14일 오전 대구학생문화센터(달서구 용산동)의 연극반. 교실 문을 열자 한 학생의 리드로 10여명의 학생들이 거울을 보면서 허리돌리기에 한창이다. '연극에 웬 스트레칭?'. 하지만 지도강사 윤은정(36·여)씨는 "연극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기초체력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연기 연습하기 전에 꼭 한다"고 귀뜸해준다. 학생들은 허리돌리기에 이어 PT체조 등으로 5분 정도 몸을 푼다.
이들은 다른 강좌처럼 일반 수강생들이 아니다. 6, 7개 중학교 학생들이 모인 연합동아리회원들이다. 함께 연기 연습을 한 지 3년째인 '베테랑'들이다. 학생들은 스트레칭 후 바로 연기에 들어갔다. 주제는 '흡연 예방'. 흡연이 청소년 건강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표현하는 내용이다. 학생들은 스스로 짠 대본을 들고 상황별로 연습을 실시했다. "어젯밤에 학원 끝나고 집에 오는데 몇몇 남학생들이 담배를 피고 있더라. 정말 짜증나." "난 멋있기만 하던데…." 서로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의 대사 표현과 표정이 전문 배우 못지 않게 리얼하다. 상황을 잘 마무리하자 강사의 칭찬도 이어진다. 하지만 가끔 대사를 하다 말이 꼬여 'NG'가 나면 교실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기도 한다.
청일점인 염인석(15·대서중 2)군은 "누나를 따라왔다가 자연스럽게 연극에 참여하게 됐다"며 "보통 방학 때는 집에서 어영부영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뭔가 색다른 경험을 하니까 재미있고 뿌듯하다"고 했다. 연합동아리 대표인 황주미(16·동천중 3)양은 "연극을 배우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고 입시에 매달리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진로의 폭도 넓어져 마음이 여유로워졌다"고 했다.
또 다른 강좌인 도예반을 찾았다. 연극반과는 달리 차분한 분위기 속에 학생들은 작품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학생들은 점토를 열심히 손으로 두드리는가 하면 나이프와 밀방망이 등으로 모양을 만들고 있다. 학생들이 만드는 작품은 그릇, 접시, 메모꽂이 등 다양하다.
학생문화센터의 도예수업에 세 번째 참여한다는 조상운(15·성서중 2)군은 "초등학교 때 미술학원에서 도예를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흙을 만지는 느낌이 무척 좋았다"며 "그냥 방학 때 집과 학원을 왔다갔다하는 것보다 뭔가 얻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김리나(16·성서중 3)양은 "고등학교를 가기 전에 문화체험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며 "마음먹은 대로 만든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고 털어놨다. 강사 송혜경(30·여)씨는 "공부에 찌든 학생들이 도예를 배우면서 여유를 찾고 다양한 표현을 하면서 창의력도 기를 수 있다"고 자랑했다.
애니메이션반이 운영되는 컴퓨터실. 이곳에선 학생들이 플래쉬프로그램을 이용해 동영상 만드는 법을 배운다. 강사 문단희(32·여)씨는 "평소 만화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수업을 듣기 때문에 학생들의 반응이 상당하다"고 했다. 수업 8일째라는 이날은 지금까지 배운 플래시프로그램의 무빙효과나 플레임 생성, 잔상 효과 등을 이용해 학생들이 직접 움직이는 캐릭터를 만드는 중이었다. 어떤 학생들은 실력이 좋아 직접 캐릭터를 그리고 있었다.
한지혜(14·계성중 2)양은 "지난해 10월쯤 학교에서 일일체험을 왔다 플래시 애니메에션 수업에 반했다"며 "애니메이션을 보기만 하다 직접 캐릭터를 움직이게 하니까 정말 신기하다"고 했다. 캐릭터가 마법을 쓰는 장면을 만들고 있다는 이수현(14·성서중 2)양은 "만화를 좋아해 틈틈히 캐릭터 그림을 자주 그렸다"며 "동작의 움직임을 계산해 일일이 수작업해야 하니까 힘든 점도 있지만 이번 방학엔 플래시애니메이션을 배운다는 생각에 즐겁다"고 했다.
대구학생문화센터 운영부 조갱래 교육연구사는 "방학을 맞아 도심에서 무료로 문화체험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며 "일부 강좌는 모집 몇 시간만에 마감되는 등 학생들 사이에 센터는 '즐기고 체험하는 공간'으로 인기가 많다"고 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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