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기는 독도] 사람들-경비대④

▲ 새벽 어스름을 걷어낸 독도로 함정이 다가서자 승무원들이 접안 준비를 위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 새벽 어스름을 걷어낸 독도로 함정이 다가서자 승무원들이 접안 준비를 위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 교대해서 들어오는 경비대원들과 뭍으로 나가는 대원들이 각자 짐을 내리고 싣기에 분주하다.
▲ 교대해서 들어오는 경비대원들과 뭍으로 나가는 대원들이 각자 짐을 내리고 싣기에 분주하다.

2009년 1월 15일 오전 5시 울릉 사동항. 바닷가 추위는 맹렬했다. 성인봉을 훑어내린 눈바람은 얼굴을 매섭게 할퀴었고 영하 5℃를 밑도는 냉기는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희끄무레한 하현달이 비추는 부두에는 함정 한 척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눈이 발목까지 빠지는 접안장에는 들짐승처럼 헤드라이트를 켠 차량 5대가 낮은 엔진음을 토해냈다. "관물 적재 완료했으면 부식 싣도록." 날이 선 명령음과 함께 플래시 불빛이 사방을 쏘아댔다. 버적버적 얼음 으깨지는 발자국 소리와 낮은 구호 소리는 긴박함을 더했다.

트럭 천막이 젖혀지고 늘어선 대원들의 손에 손을 통해 부식박스들이 함정으로 옮겨졌다. "지금부터 탑승 인원 확인을 하겠습니다." "대원들 8열 횡대 헤쳐모여." 1시간 30분에 걸친 화물 적재 작업이 완료되고 대원들이 일렬로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거친 입김을 연방 내뿜으며 대원들은 함대 침실로 들어섰다. 승선이 끝나자 함장실로부터 출항준비 명령이 하달되었고 승무원들이 정위치했다. 배는 서서히 후진하면서 항구를 빠져나왔다. 접안장에 남았던 사람들도 서둘러 차에 올라 돌아갈 준비를 했다.

함정 내무실에 자리 잡은 정세영(22) 이경은 무너지듯 엎어져 잠에 빠져들었다. 간밤 이동준비에 한잠도 자지 못하고 부두까지 눈밭을 1시간가량 걸어와 배에 오르자마자 긴장이 풀린 것이다. 초계와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함정은 독도경비대원들을 편안하게 수용할 만큼 공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때문에 의무실과 식당 할 것 없이 등짝을 붙일 수 있는 곳에는 모두 빼곡히 드러누웠다.

먼바다로 빠져나온 배는 롤링과 피칭을 거듭하며 온몸을 사정없이 흔들어댔다. 1시간 30분가량 달렸을 때 망망대해의 바다는 비로소 서서히 어둠을 걷어냈다. 수평선에 자욱이 깔린 구름을 붉게 물들이며 아침 해가 솟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다는 새로운 하루를 열고 있지만 피로에 지친 대원들은 깊고도 나른한 잠 속에 빠져들었다.

다시 흔들리기를 1시간여. 날은 이미 밝았고 저 멀리 동쪽에는 독도가 완연한 '삼봉도' 형태를 갖추고 떠있었다. 고물 쪽에는 한겨울 바람에 물보라가 흩날리고 가끔씩 주기적으로 밀려드는 너울은 뱃전을 타고 넘을 듯 위협했다.

브릿지에서는 독도 현지 사정을 확인하기 위해 교대 대기 중인 경비대와 교신을 했다. 파도가 접안장 위를 넘지는 않지만 너울이 만만찮은 상황. 함장은 독도경비대장을 불러 간단한 회의를 한다. 접안에는 이상이 없으나 오일 송유관 연결에는 무리. 일단 병력과 짐을 최대한 신속하게 내리고 교대팀을 승선시키기로 결정이 났다.

회항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이었다. 독도는 골마다 흰 눈을 머금고 두 개의 섬이 갈라진 모습으로 손에 잡힐 듯 다가섰다. "입항 30분 전. 하선 준비하세요!" 스피커를 통해 명령이 떨어지자 깊은 잠에 빠졌던 대원들은 동시에 눈을 떴다.

어리둥절한 채로 고물 쪽으로 나간 대원들은 갑자기 눈앞에 다가선 독도의 위용에 놀라 가슴이 벅찼다. '독도다!'라는 소리에 대원들은 앞다투어 밖으로 나와 기념촬영을 했다. 승무원들은 갑판장의 지시에 따라 이미 로프를 내릴 준비를 마쳤다.

독도 접안장에는 교대해 나갈 병력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아직도 삭도에는 짐이 가득 실린 채 내려오고 있었다. "맨 앞 로프 던져. 뒤쪽도. 야! 로프 맨 앞 앵커에 걸어." 날카로운 소리들이 긴박하게 날아다니고 승무원들이 정신없이 움직인 끝에 함정은 어렵사리 부두에 매였다.

하선 명령이 떨어지자 이승준(22) 일경은 일착으로 뛰어내렸다. 이 일경은 누구보다 먼저 독도땅을 밟고 싶었다. 울릉도에서 고참들이 말끝마다 '독도에 가면, 독도에 가면'이란 소리를 들었던 터이기도 하지만, 민족의 정기가 한데 모인 독도를 다른 사람보다 먼저 밟는 감격을 한껏 맛보고 싶었다.

'드림 소대'(대장 박영언 경위)는 지난해 12월부터 기상이 고르지 못해 정말 우여곡절 끝에 독도에 들어왔다. 드림 소대는 이 혹한기 동안 바깥 세상과 단절되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악조건의 상황 속에서도 온 국민의 국토수호 의지가 담긴 우리 독도를 의연하게 지켜낼 것이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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