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제발 급매만은…" 아파트 입주민들 '가격지키기' 안간힘

주택 경기 침체로 급매물이 넘쳐나면서 일부 대단지를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 지키기 운동'이 일고 있다.

입주자 대표 모임이나 부녀회 등을 중심으로 일정 가격 이하로는 집을 팔거나 전세를 놓지 말자는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구체적인 단체 행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부동산 업계에서는 "급매물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지난해 가을철 이후부터 이러한 움직임이 시작됐다"며 "아파트 가격이 자고나면 오르던 2~3년전 일부 단지에서 아파트 가격을 올려받기 위해 담합을 하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라고 말했다.

◆특정 가격대 이하는 안돼

"평당 700만원 이하로는 팔지 마세요."

단지 규모가 500가구를 넘는 대구 달서구 A단지내 각동 엘리베이트에는 지난주 '이색 안내문'이 내걸렸다.

속출하는 급매물로 아파트 가치가 떨어지니 단지 주민 전체를 위해 지나치게 낮은 가격의 아파트 매매를 자제해 달라는 부녀회의 호소가 담긴 안내문.

A단지 관계자는 "지난해 인근 지역인 성당동을 중심으로 수천가구가 넘는 재건축 단지 입주가 시작되면서 급매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오죽하면 이런 호소문을 붙였겠느냐"고 했다.

지난해 입주를 시작한 수성구 B단지는 입주민 대표 모임을 중심으로 일정 가격 이하로는 '임대'를 놓지말자는 결의를 했다.

전세가격이 110㎡(30평형) 기준으로 1억8천만원 정도였지만 입주 물량이 늘면서 2천만~3천만원정도 가격을 내린 급매 전세 물량이 잇따라 등장한 때문이다.

주변 부동산 업소 관계자는 "급매물로도 아파트가 팔리지 않자 전세로 돌아선 물건이 늘면서 임대가격까지 떨어져 이러한 움직임이 나타났다"며 "주변에 입주하는 가구수가 워낙 많아 큰 효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가격 방어에는 일정 부분 성공했다"고 밝혔다.

◆급매로 내놓으면 왕따

집값 하락세가 나타나면서 주민 모임 때마다 급매물이 단골 메뉴로 오르고 있다. 시세보다 낮은 급매물이 팔려나갈 경우 아파트 최저 가격이 내려가게 되고 이후 등장한 급매물은 또다시 가격이 내려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탓이다.

이에 따라 매도·매수인이 급매 가격을 비밀로 하는 새로운 풍속도도 생겨나고 있다.

수성구 만촌동 대단지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K 중개사는 "급매 가격에 아파트 매매를 한 경우 집을 판 사람은 물론 구입한 사람도 이사 후에 주민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된다"며 "매매 계약 때 아예 상호간에 올린 가격을 정해놓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아파트 입주민들의 이러한 집단 행동은 성공적인 결과로는 이어지기 힘들지만 어느 정도 심리적인 효과는 가져올 수 있다.

또 부녀회 등 주민대표 모임에서 공식적으로 최저 가격을 밝힐 경우 매매 가격에 있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는데다 주변 타단지와도 차별성을 가질 수 있어 심리적인 안정감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부동산 업계의 설명이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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