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웅인(38)에게 '숱한 인터뷰 중에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코믹 배우 이미지에 대한 부담감'이라고 답했다. 시트콤 '세 친구'와 영화 '두사부일체'의 그늘은 그만큼 짙고 넓다. 하지만 데뷔 후 13년간 그가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는 코미디뿐만이 아니다. 지고지순한 순정파도 있고,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범죄자 역도 있다. '이중적 이미지의 소유자'라는 평가도 단골 메뉴다. 사실 그처럼 웃을 때와 웃지 않을 때의 표정이 극명하게 달라지는 배우도 드물다. 냉혹한 무표정에서 영락없는 익살꾼으로 둔갑하는 반전의 묘미라 할까. 18일 오후 영화 '유감스러운 도시'의 팬 사인회를 위해 대구를 찾은 그를 만났다. 바쁜 일정에 최근 위염으로 이틀간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건강부터 물어봤다. 그는 "영화 홍보 일정과 연극 공연이 겹쳤고 최근 소속사 없이 직접 다니면서 자기 관리에도 소홀했던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참 생기 넘치는 사람이다 싶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 뒤로 '또 인터뷰 해?'라는 그의 절규(?)가 들렸다.
◆아빠보다 유명해진 딸
-아내 덕분에 대구가 굉장히 친숙하겠어요. (지난 2006년 결혼한 아내 이지인씨는 경북대 생명공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동기가 아내의 고종사촌 언니예요. 결혼식 참석 차 대구 왔다가 만났고, 친구 아들 돌잔치 때문에 다시 와서 인연이 됐죠. 제가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니까 장인어른과 함께 자주 다녀요. 줄 서서 먹는다는 짬뽕집 있죠? 유명하다고 해서 갔는데, 아무리 그래도 줄 서는 건 못하겠더라고요. 연예인이랍시고 얼굴 들이밀었다간 욕먹을 것 같아 포기했어요."
-세살 된 첫째딸 세윤이가 아빠보다 더 유명해진 것 같은데요? (인터넷을 통해 세윤이 사진이 퍼지면서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톰 크루즈와 케이티 홈즈의 딸 수리와 닮았다며 '한국의 수리'라는 별명도 얻었다.)
"어제도 사인회를 하는데 제 얘기보다는 딸 얘기를 많이 하더군요. 옛날에는 정웅인 딸이었는데, 이제는 제가 세윤이 아빠가 된 것 같아요. 이번에 톰 형(?)이 한국에 올 때 수리를 데리고 왔으면 같이 인터뷰를 잡아도 좋았을 뻔했어요."
-두 딸이 커서 연기를 하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하실래요?
"연기는 자신을 갖고 충분히 준비를 했는데도 쓴맛을 보거나 대중의 외면을 받았을 때는 굉장한 박탈감을 느끼는 직업입니다. 우울증이 생기기도 하고. 그런 걸 알기 때문에 저는 시키지 않으려 하죠. 정말 끝까지 하겠다고 우기면 제가 냉정하게 모니터를 해서 평가를 할 거예요. 또 얼굴에 큰 수술을 감행해야 된다면 절대 반대예요."
◆난 내성적이고 소심한 사람
-서울예전 연극과를 전공했는데, 언제부터 연기에 대한 꿈을 꾼 겁니까?
"고교 때 특별활동반에 연극반이 있었어요.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연극반은 꿈도 안꿨죠. 그런데 선배들이 반강제로 연극반으로 데리고 갔어요. 학교 축제에서 '밧줄'이라는 작품에 나이 든 화가 역을 맡았는데, 꽤 잘했나봐요. 공연을 보신 선생님의 권유로 연기를 택했고, 서울예전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경쟁률이 7.9대 1이었는데 다행히 합격을 했죠."
-데뷔한 지 14년째인데 그동안 이렇다 할 구설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요?
"내성적이다 보니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평생 연기를 해야 되는데 사건을 벌이거나 싸운다거나 음주운전을 하면 1~2년을 쉬어야 되잖아요. 연기 아니면 죽는다고 느끼거든요. 사건·사고를 겁내고 스스로 관리를 했던 것 같아요."
-차를 주차할 때 주차선에 딱 맞춰서 대는 편이세요?
"저는 정확해요. '잠깐 아무렇게나 댔다가 금방 나가면 되지'라는 생각은 안해요. (부모님의 영향때문인가요?) 1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굉장히 꼼꼼한 분이셨어요. 항상 주머니에 메모지를 넣고다니시면서 누군가 좋은 얘기를 하면 꼭 적어 놓으셨죠. 방송대 국문과 나오셔서 시도 쓰셨는데요. 아버지의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타협의 끈을 놓지 않는 배우
-본인 생각에 제대로 된 데뷔작을 꼽는다면 어떤 작품이에요?
"1995년 영화 '리허설'이나 1996년 SBS '천일야화'에서 단역으로 첫 출연을 했죠. 데뷔작은 '눈길남'으로 출연했던 영화 '조용한 가족'(1998년)이겠지만 진짜 연기는 영화 '반칙왕'(2000년)인 것 같아요. 평범하고 소심한 은행원이었는데 편집 과정에서 비중이 많이 작아진 건 아쉬워요. (어떻게 출연한 겁니까?) 당시 SBS 시트콤 '미스 앤 미스터'에 출연할 때였는데요. 김지운 감독님이 최민식씨를 캐스팅하려고 모니터링을 하다가 저를 보고 '연기를 곧잘 한다'며 캐스팅했죠."
-배우 조재현씨가 프로그래머를 맡았던 '연극열전2-민들레 바람되어'라는 연극에 출연했는데요?
"13년 만에 연극이었죠. 첫 연습을 마치고 막걸리를 마시러 대본을 옆구리에 끼고 대학로를 걸었는데 느낌이 묘하더군요. 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 다음달 13일부터 앙코르 공연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아이들이 커서 아빠와 함께 영화 시사회에 갔을 때 아이들로부터 어떤 얘기를 듣고 싶어요?
"아빠가 자기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배우'로서 연기를 한다고 느꼈으면 해요. 물론 일주일에 두세 작품을 하면 자식들에게 더 좋은 옷과 음식을 줄 수 있겠죠. 하지만 힘들더라도 타협의 끈을 놓지 않는 배우, 아빠는 배우로서 평생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자랑스러움을 줬으면 좋겠어요."
◆코미디 배우 vs 코믹 연기를 잘하는 배우
-사람들은 정웅인씨에 대해 코믹한 이미지로 기억합니다. 이런 이미지는 배우로서는 한계가 아닐까요?
"코미디의 감을 갖고 태어난 것에 대해서는 감사합니다. 시트콤 '세 친구'와 영화 '두사부일체' 두 작품으로 굉장히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인상을 준다고 생각해요. SBS '은실이'에서는 강혜정씨랑, MBC '국희'에서는 김혜수씨랑 멜로 연기가 있었는데 잊혀지더라고요. 그때 예능프로에서 '감 잡았~어'를 외치고 '세 친구'라는 작품을 만나면서 코믹 이미지가 굳어졌죠. 다행히 지난해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을 하면서 코믹 이미지를 상쇄하는 큰 전환점이 된 것 같아요."
-하지만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종영 이후에 개봉한 영화 '잘못된 만남'은 흥행에 실패했잖아요?
"쓴맛을 본거죠. '유감도시'보다 훨씬 심혈을 기울였던 작품인데 외면받았죠. 과연 대한민국에서 배우로 연기한다는 게 도대체 뭔가 싶었어요. 서글펐지만 주인공보다는 주연을 받쳐주면서도 정웅인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우스갯소리로 준호형이 하는 작품에는 같이 묻어가되, 준호형을 추월해서는 안되겠다 그래요."
-단역까지 해서 18편 정도 영화에 출연했는데요. 흥행 여부 상관없이 가장 잘했다 싶은 작품이 뭔가요?
"제가 언제까지 연기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최고 작품 베스트5를 꼽아요. 그 중에 '마법사들'(2006년)은 5위에요. 나머지 1~4위는 아직 안 나왔고요. 앞으로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제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서 베스트 5를 채워가려고 해요." (송일곤 감독의 '마법사들'은 멤버 자살로 해체됐던 인디밴드가 한자리에 모이면서 옛 기억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재현한다는 내용. 96분 전체를 편집없이 한 쇼트로 찍는 실험적인 기법으로 주목받았다. 옛 사랑을 잊지 못하는 순정파 연기를 선보였다.)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 중에서 TV에서 방송될 때 채널을 돌려버리는 영화나 드라마가 있나요?
"'서클'? (사기당했던 때죠?) 하하하. 맞아요. 빚 독촉에 시달려서 연기를 제대로 못했던 작품이죠. (귀가 얇다는 그는 2003년 영화 '서클'을 촬영할 당시, 주상복합아파트 경매에 연결해 주겠다는 지인에게 속아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고, 차를 팔아 투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인은 사채업자를 통해 돈을 받아 빼돌렸고, 그는 불어나는 이자와 사채업자의 협박에 시달렸다. 그에게 '빚은 다 갚았냐'고 물었더니 "아직 조금 남았다"고 했다.)
◆들키지 않는 연기 보여주고파
-이번에 개봉한 '유감스러운 도시'가 '두사부일체'나 '투사부일체' 등 전작들과 다른 점은 뭔가요?
"사실 '투사부일체'는 1편 '두사부일체'의 거의 답습이에요. 하지만 '유감도시'는 이전과 달리 볼거리를 많이 제공한 게 특징이에요. 코미디적인 요소도 있지만 한고은씨와 멜로의 묘미도 있고, 슬픔의 코드도 있어요. 007과 투캅스는 높이 평가하고, 우리 영화만 조폭 영화라고 터부시하고 상업코드가 많다고 손가락질하는 건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으세요?
"저는 '세 친구'를 하기 전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세 친구'가 코믹 연기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줬지만 그 점 때문에 배우로서 힘든 거죠. '세 친구'를 하지 않고 오히려 연극을 더 하고 있었다면 지금 톱클래스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송강호보다 더 잘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살짝 해봅니다."
-10년 뒤 정웅인은 어떤 배우였으면 좋겠습니까?
"앞서 말한 베스트 5 중에서 1, 2개는 더 남겼으면 해요. 정웅인이 연기를 하면 관객들이 등받이에서 몸을 일으켜서 보는 느낌 있잖아요. 정웅인의 연기는 뭔가 다르고, 들키지 않는 연기로 만족감을 주는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또 한 화면에서 선악의 양면이 공존하는 연기도 찾아갈 겁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snet.co.kr
* 정웅인은?
1971년 서울 출생. 서울예전 연극학과 졸업. 1995년 영화 '리허설'과 1996년 SBS '천일야화'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와 TV 드라마에 데뷔했다. SBS '은실이', '백야 3.98', '순풍산부인과' 등에 출연했고, MBC 드라마 '국희', 영화 '조용한 가족', '반칙왕' 등에서 인기를 얻었다. 스타덤에 오른 건 시트콤 '세 친구'와 영화 '두사부일체' 등 코믹 연기를 통해서. 이후 '투사부일체', '돈 텔 파파' 등으로 코믹 이미지가 굳어졌다. 하지만 2006년 영화 '마법사들'과 지난해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영화 '잘못된 만남' 등에서 정통 멜로 연기를 선보였다. 2006년 6월 이지인씨와 결혼해 두 딸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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