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충렬 감독 "소와 할아버지의 삶, 있는 그대로 촬영"

'워낭소리'를 연출한 이충렬(42) 감독은 전남 영암 출생이다. 고려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1993년부터 영상작업에 대한 관심을 갖고 외주제작사 PD로 여러 편의 방송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워낭소리'는 첫 극장용 장편 다큐멘터리로 앞으로 방송과 영화를 병행할 예정이다. 직접 만나고 싶었지만 선댄스 영화제 참가와 시사회 등으로 바빠 결국 전화를 통해 인터뷰를 했다.

-'워낭소리'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워낭소리는 우리 기억 속에 화석처럼 잠든 유년의 고향과 아버지와 소를 되살리는 주술과도 같은 작용을 할 것입니다. 삶의 내리막길에서 빚어낸 어쩌면 이 시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소와 아버지의 아름다운 교감과 눈물겨운 헌신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아울러 단지 고기가 돼 버린 요즘 소를 보면서 '소는 정말로 주인과 교감하는 것일까?라는 명제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워낭소리'가 갖는 의미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주인과 소를 소통시키고 교감하게 만드는 '매개음'입니다. 아울러 그들이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상징인 셈이죠. 워낭이 멈춘다는 것은 둘을 교감시키는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결국 이것은 그들의 관계가 다했음을 의미합니다."

-굳이 최원균 할아버지와 소를 등장시킨 이유는?

"아버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결심을 한 뒤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했습니다. 어린 시절 시골서 자랐기 때문에 가장 흔하게 봤던 게 아버지와 소였고, 이를 통해 풀어보자고 생각한 것이죠.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영화를 만드는 소중한 밑천이 됐습니다. 봉화를 찾고 나니 쇠락한 고향을 불러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당한 아버지와 멀쩡한 소보다는 낡고 핸디캡이 있는 캐릭터를 찾고 싶었습니다."

-등장인물을 섭외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1993년 애니메이션을 시작으로 이후부터 방송 독립PD로 외주 제작사에서 일을 했습니다. 고향과 노인, 어린이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을 많이 했는데, 특히 고향 프로그램을 수년간 하면서 그때 전국 마을 곳곳의 이장과 부녀회장, 농축협 관계들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이런 네트워크를 통해 적당한 등장인물을 수소문했죠. 수시로 전화를 주고받고, 강원도 횡성부터 전국 우시장은 다 돌아다녔습니다. 진도와 완도까지도 가 봤습니다. 여러 케이스가 있었지만 제가 원하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죠. 그러던 중 2005년 봉화 축협 관계자가 전화를 해 왔습니다. 다리가 불편하신 여든살의 할아버지와 평균 수명의 두 배 이상을 산 늙은 소. 바로 이거다 싶었죠."

-촬영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2005년 초에 만나서 봄부터 촬영을 했어요. 노부부가 촬영 경험이 전혀 없다 보니 카메라에 적응을 못 하셨죠. 할아버지는 사진 찍는 줄 알고 카메라를 대면 가만히 서 계셨어요. 일상이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해 파악할 기간이 필요했죠. 모든 일상과 무엇을 찍을지를 결정한 뒤 기다렸습니다. 영화 속 화면을 보면 상당히 차분하고 안정돼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소 덕분이죠. 서두르는 법이 없었거든요. 길목에서 기다리다가 가만히 카메라를 대고 있으면 됐습니다. 전혀 연출은 없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담았을 뿐이죠."

-원래 '워낭소리'는 TV 다큐멘터리용이라고 들었는데?

"원래 영화로 만들려던 게 아니라 편집 전까지는 방송용이었습니다. 지난 2006년 늙은 소가 죽은 뒤 젊은 소를 키우는 부분까지 다 찍었죠. 햇수로 3년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작비가 많아졌죠. 극장용으로 바뀐 이유는 돈이 없어서입니다. 방송국에서 주는 돈은 뻔한데 제작비는 2, 3배로 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다큐영화 '우리학교'의 제작자인 고영재씨를 만나서 영화로 선회한 거죠."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

"저 때문에 소가 먼저 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 아픈 적도 많았습니다. 제발 (등장인물에 대해서) 영화 속에서만 나눠주기를 바랍니다. 언론에서 찾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소는 할아버지댁 밭 너머에 묻혔습니다. 할아버지 아드님과도 약속을 했어요. 영화로만 보여주고 프라이버시에 대해서는 일절 공개하지 않기로. 할아버지 댁의 일상이 깨져버릴까봐 정말 조심스럽습니다. 구경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앞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누가 봐도 공감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입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