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800여명의 화이트칼라가 근무하는 곳. 단일기업으로 대구에서 가장 종사자 숫자가 많은 회사. 시중은행들에게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며 대구경북지역 최대 금융시장 점유율을 가진 금융회사.
대구경북지역민들과 뗄래야 떼기 어려운 대구은행의 수장이 바뀐다. 현 이화언 행장이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특히 이 행장은 재임중 좋은 실적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연임 시도를 할 수 있지만 '후배들을 위해서'라며 아름다운 퇴장을 선택, 마지막까지 지역사회의 품격을 지켜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빚만 지고 갑니다"
이 행장은 기자에게 대구경북 지역민 및 은행으로부터 빚진게 너무 많다고 했다.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대구은행은 물론, 지역사회로부터 얻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수습행원으로 들어온 뒤 벌써 40년동안 받아왔습니다. 은행과 지역사회에 빚만 지고 떠납니다."
기자는 "더 할 수도 있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했다. 지금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등기 수석부행장으로서의 잔여임기 1년, 그리고 행장으로서의 제 임기 3년을 했습니다. 이제 제게 맡겨진 소임을 다했다고 봐야 합니다"고 그는 잘라 말했다.
사실 이 행장은 지난 1년간 오해를 많이 받았다. '후계구도를 밝히지 않는다', '혼자 오래할려고 한다' 등의 말이 등뒤에서 쏟아졌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저는 물러날 계획을 오랫동안 생각해왔습니다. 후계자 양성도 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결단을 내렸습니다. 능력있는 후배에게 길을 터주는 것은 대구은행의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이것을 이어가야죠. 능력있는 후배가 대구은행을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는 여러 사람들이 "이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말을 갈아타면 안된다. 모두 불안해한다"고 말렸지만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구은행이 어떤 조직입니까? 대구은행은 각종 지표는 물론, 시스템적으로 최고의 위치에 올라 있습니다. 행장이 바뀌더라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는 대구은행의 저력을 믿고 있다고 했다.
◆대구은행 황금시대 열었다
2005년 3월 대구은행장으로 취임한 이 행장은 대구은행의 '황금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취임하던 그 해 총자산 20조원을 돌파했고 그 이듬해에는 대구은행 창립 이후 처음으로 당기순이익이 2천억원을 넘어섰다.
이후 간접투자상품 판매고 2조원 돌파, 인터넷뱅킹 이용고객 100만명 돌파, 신용카드 고객 100만명 돌파 등 잇따라 신기록을 쏘아올렸다. 지방은행 중 신용등급 사상 최고라는 명성까지 재임기간 중 만들어냈다.
매년 2, 3차례씩 외국에 직접 나가 대구은행에 대한 투자를 권유했다. 때문에 대구은행은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종목이 됐다. 대구라는 지방도시에 있지만 대구은행은 글로벌은행의 위치에 오른 것이다.
재무적 성과 뿐만 아니다. 이 행장은 '엉뚱한 사람' '괴짜'라는 오해를 받아가면서까지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도 관심을 기울여왔다. 또 기업이 제대로된 기업 문화를 전파해야 하며 대구권에서 규모가 가장 큰 대구은행이 선도적 역할을 해야한다고 항상 강조했다.
때문에 그는 열린 경영, 펀 경영, 직원중시경영, 환경경영 등의 개념을 도입, 직접 그 실천을 진두지휘했다.
환경경영을 전파할 때는 스스로 겨울에 내복을 입고 다녔고 집무실 전등을 껐다. 환경경영은 다른 기관들이 벤치마킹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졌다.
직원들과 소통하기 위해 매주 CEO 편지를 직원들에게 날렸다. 편지 안에 자신의 생각을 쓰고 CEO는 이런 마음을 갖고 있다고 알렸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 이화언=김천 출신으로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나왔다. 1970년 11월 대구은행에 입행한 그는 중앙지점에서의 대부업무 행원으로서 은행 업무를 시작했다. 이후 행장 비서실장, 뉴욕사무소장, 국제부장, 서울지점장, 융자부장 등을 거쳐 2000년 2월에 부행장까지 올랐다. 2003년 3월엔 수석부행장이 되면서 차기 행장을 예약했고 2005년 3월 제9대 대구은행장이 됐다. 외국어에 능통해 오랫동안 해외근무를 하면서 국제감각을 키웠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