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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살물죄(殺物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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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생명을 죽이지 말라.'

이 가르침은 불가의 으뜸 계율이다. 살아 있는 목숨은 하나같이 인연 따라 생겨난 존재이기에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가치롭고 그래서 존중받아 마땅하다. 까닭에 산 것 죽이는 행위는 그 어떠한 죄보다도 가장 크고 무거운 죄라는 것이다.

생명 있는 것을 죽이는 일만 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생명 없는 것을 죽이는 일도 마찬가지로 죄가 된다. 살생죄(殺生罪)의 대가 되는 살물죄(殺物罪)다. '살물'이란 물건을 아껴 쓰지 아니하고 허투루 소비하는 것을 이름이요 그 죄가 곧 살물죄인 것이다.

무릇 생명 가진 존재들에 일정한 생존 기간인 수명이 있듯이, 물건에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고유의 수명이 있다고 했다. 물건을 그 수명 닿는 데까지 사용하지 아니하고 버리는 것은 살물죄를 범하는 짓이다. 세상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정령신앙으로 따져 볼 때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인 성싶다.

보릿고개 넘기가 태산 넘기보다 힘겨웠던 지난 시절, 우리는 몽당연필 한 자루도 아끼고 또 아꼈다. 갱지 한 장도 함부로 없애지 않았다. 손에 잡히지 않을 때까지 닳으면 볼펜대에다가 끼워서 썼고, 표면이 새까맣게 될 때까지 두 겹 세 겹 덧칠을 해 가면서 사용했다. 그렇게나 알뜰했었다. 그 빈집 같던 생활 가운데도 사람과 물건 사이에는 도타운 정이 흘렀었다.

풍요 시대의 부산물인가, 폐기신(廢棄神)이 들렸는가. 요새 아이들은 통 물건 귀한 줄을 모른다. 아직 멀쩡한 필통도, 쓸 만한 가방도, 생생한 신발도, 말끔한 휴대전화도 미련 없이 버린다. 그러다 보니 분실물 보관 창고에는 주인을 기다리는 물건들이 넘쳐나는데도 도무지 찾아갈 생각을 않는다. 여기에는 소비가 미덕이라며 분별없이 떠들어 대는 대중매체가 지대한 공헌을 하는 건 아닐까.

처녀가 애를 낳아도 다 제 할 말은 있다고 물건을 아껴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논리를 갖다 대길 좋아한다. 자신들이 이렇게 소비를 해 주어야 경제가 돌아가지 않느냐고. 그러니 자기들이야말로 오히려 애국자라고.

그들의 항변에도 일견 일리는 있어 보인다. 소비가 없으면 생산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세상 모든 것에는 정도가 있는 법, 분에 넘치는 사치와 건전한 소비는 그 뿌리부터가 다르다.

무엇이든 적당할 때 아름답고 빛이 난다. 지나친 자린고비도 물론 문제이지만 도를 넘어선 소비도 분명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중용의 미덕은 언제 어느 경우에나 영원불변한 가치를 지니는가 보다. 곽흥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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