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민운동가라도 가사분담 부부싸움해요" 시민단체활동가 커플

▲ 은재식·김명희 부부
▲ 은재식·김명희 부부
▲ 강금수·이선영 부부
▲ 강금수·이선영 부부

'강금수' '은재식' '조광현'.

대구에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봄직한 이름이지만 이름만 나열해놓으면 '그 사람이 누구지?'라는 물음부터 불쑥 튀어나올 정도로 눈에 익은 이름은 아니다. 하지만 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 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구경실련 사무처장이라는 직함이 붙으면 달라진다. 이들의 직업은 '시민단체 활동가', 간단히 '활동가'라고 대변되는 이들은 신문 사회면에 단골로 등장하는 사람들.

이 때문에 이들의 이름을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입력해 나오는 기사를 훑어보면 어두운 내용의 기사 투성이다. 특히 활동가들은 정부당국의 실정을 지적, 대안을 제시하기에 '강성, 대쪽'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들은 약간 억울하다. 역시나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대구시민이면서 누군가의 아들이다. 다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개선시키기 위해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 다를 뿐이라는 항변이다. 실제로 소박한 가정을 꾸리거나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유별난 것이 있다면 시민활동가 상당수는 비슷한 직업군인 활동가와 결혼해 살고 있다는 것.

은재식(44·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김명희(48·여·대안가정운동본부 사무국장) 부부, 강금수(41·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이선영(38·여·반딧불이) 부부에게도 갈등이 있고,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인간적인 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대안가정운동본부'와 '반딧불이' 사무실에서 각각 이들 부부를 만났다.

◇ 우리도 일반 부부다

'강성'이라는 말이 늘 따라다닐 정도로 시민단체 활동가에 대한 선입견은 강하다. 하지만 이들도 강도만 약할 뿐 힘들면 서로 싸우기도 하는 평범한 부부였다. 다만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하면 조금씩 달라진다는 게 이들의 한목소리.

특히 결혼 13년차인 은재식·김명희 부부는 성격이 워낙 달라 결혼 전 주변의 만류가 심했다고 한다. 시민사회단체에서 알려진 대로라면 김 국장은 감성적이고 감각적인데 반해 은 처장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 하지만 이들은 "성격차는 어느 부부에게나 있는 것이고 조금씩 합의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결혼한 6개월차 신혼인 강금수·이선영 부부에게도 이해하기 힘든 행동양식이나 성격차는 어느 정도 있다고 했다. 만혼인지라 어느 정도 노련미가 가미된 신혼부부여서 그런지 서로에 대한 아량이 남달라 보였다.

만삭인데다 한 달째 감기를 달고 있는 이 국장은 "남편이 회의를 마치고 사람들과 술을 마신 뒤 늦게 들어와 노래를 같이 부르자고 해도 밉지 않았다"고 했다. 동료들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성화였지만 말이다.

◇ 그래도 이 사람이었기 때문에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결혼했다는 게 이상하게 들릴 법하지만 "그럼, 같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반문하는 이들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어쨌든 뜬금없이 눈이 맞는 경우는 없었다. 이들 부부는 역시 비슷한 환경에서 만났다고 했다.

강금수·이선영 부부는 광우병 소고기 반대 촛불집회 기획·실무를 맡으면서 평생 인연의 끈을 맺었다. 말 그대로 거리에서 눈이 맞은 것. 강 처장은 "무엇보다 서로 지향하는 바가 같고, 그 때문에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믿어주고 격려해 줄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중요했다"고 했다.

부부가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하게 된 계기도 비슷했다. 목회자 지망생이었던 강 처장은 학생운동에 참여하면서 종교적 신념이 사회운동적 가치로 바뀌어 시민운동에 참여하게 됐다. 사회학도였던 이 국장은 청소년공부방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꼈다고 했다.

은재식·김명희 부부도 마찬가지. 이들은 1988년 1월 첫째 주 수요일 포항의 한 아동양육시설에서 만났다. 김 국장은 그곳의 보육사였고, 은 처장은 자원활동가로 시설을 방문한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사이였다고 고백했다. 이후 10년 동안 선후배로 지내며 '달라도 너무 다른 존재'로 서로를 인식했을 정도. 하지만 이들은 누구보다 자신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잘 아는 사람이 서로임을 알게 됐다. 싸운 것도 정(情)이 돼 신뢰감을 갖게 됐다는 것.

시민사회단체에 발을 들이게 된 이유는 조금 달랐다. 김 국장은 원래부터 보육사였기에 보육시설 이외의 대안을 고민하다 '해뜨는집'이라는 아동그룹홈을 만들었다. 2002년 4월 '대안가정운동본부'를 맡게 된 것. 대학시절부터 사회복지시설에 자원활동을 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 은 처장은 원래 지질학도였다. 하지만 전공은 달라도 시설의 민주화와 인권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활동, 현장으로 뛰어든 경우다.

◇ 부부가 시민활동가라서

두 부부는 서로 고민을 나누고, 지혜를 구할 수 있고, 격려받을 수 있어서 좋다고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서로의 활동과 생각, 삶의 방식을 잘 이해한다는 걸 가장 큰 장점으로 꼽고 있었다. 가치관이 일치하다 보니 우선순위나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갈등이 거의 없다는 것. 이들의 부부싸움이 적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은재식·김명희 부부는 조금 달랐다. 은 처장은 자신의 강성 이미지 때문에 김 국장이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를 보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이 부분은 김 국장도 이미 겪은 바였다. 이에 대해 김 국장은 "시민사회단체 활동 초기에 남편은 복지계에서 꽤 강성 이미지로 알려져 있어 실제로 남편을 만난 현장의 사회복지사들 중에는 혼란스러워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했다. 심지어 "뿔이라도 달려있는 줄 알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는 것. 김 국장은 "크게 불편을 느끼지 않지만, 남편은 자신의 활동이 아내에게 다 노출되어 있으니 좀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며 "그래서 의도적으로 외부행사에 함께 다니지 않게 됐다"고 했다.

은 처장은 "우리 부부를 동시에 만난 사람은 우리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나보다는 아내에 대한 호감도가 훨씬 높다. 내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아내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저평가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은 복지운동을 하고 있기에 비리와 싸울 때가 종종 있고 타협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 있기 때문에 강성으로 비치는 것인데, 아내가 같은 이미지로 평가될까 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실제 이번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려 한 4쌍의 부부도 이런 점을 경계했기 때문이었다.

◇ 앞날에 대한 걱정도 있다

현실적인 부분으로 돌아가보면 시민활동가는 먹고사는 데 어려움이 뒤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중도에 시민활동가의 길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선택하는 이들도 적잖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입을 모아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은재식·김명희 부부는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는 가난한 편에 속하는 것 같지만 우리가 체감하는 정도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김 국장은 "친구들 모임에 갔더니 내가 제일 돈 걱정을 안하고 있더라"며 "벌어들이는 돈의 객관적 수치가 가장 달리는 게 나였지만, 아등바등하는 사람은 따로 있더라"고 했다. 은 처장은 "20대에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시작해서 이제 40대 중반인데 요즘 들어 노후생활이나 아이들 교육·양육비, 그리고 부모님이나 가족들이 큰 병에 걸릴 경우 어떻게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특히 저축이 거의 없어 불안한 부분이 다소 있다고 솔직히 말했다.

강금수·이선영 부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 부부는 모두 신용카드를 갖고 있다고 했다. 급여가 제때 나오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방책이라고 했다. 강 처장은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방법으로 사는데, 그럼에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며 "소비패턴을 조금씩 바꾸고 지혜로운 소비법을 창조해 나가려고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 국장도 "적게 벌고 적게 쓰면 되기에 별 문제는 없다"고 했다. 그도 "주변에 돈 많이 버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보다 돈 없다고 더 '징징'거리더라"며 "비교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두 부부의 연 급여는 중형승용차 1대값 안팎이었다. 이들은 그래도 "비정규직이나 88만원 세대보다는 조금 낫지 않으냐"고 했다.

◇ 하지만 이건 절대 변치 않을 신념

강금수·이선영 부부는 결혼 전에 서로에 대한 다짐같은 것을 많이 하지 않았다고 했다. 조건을 많이 달면 거기에 얽매이게 되고, 이행하지 못하면 신뢰에 금이 가기 때문이라는 것. 얼핏 들으면 무슨 소린가 싶기도 하지만 다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서로 존중하며 믿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 부부도 가정 내에서 하나의 원칙은 꼭 지키고 있었다. 다투고 속이 상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하루를 넘기지 말고 어떤 식으로든 푼다는 것. 결혼 연륜이 짧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덕분에 부부싸움의 기억은 거의 없다고 했다.

이 국장은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르다. 내 삶의 방식과 태도를 강요하지 말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6개월차 부부지만, 40세 안팎인 이들 부부는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가사를 분담하고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는 것을 꼭 지키겠노라고 했다.

반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은재식·김명희 부부는 '정직과 성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천한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더 그렇다는 설명이다. 김 국장은 "딸아이 키울 때 우리 부부는 딸이 정직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우리 자신이 정직한 일상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아이는 우리가 말로 가르치는 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배운다"고 말했다. 선의의 거짓말은 물론 변명과 합리화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 이 때문에 은 처장은 어린 딸이 조목조목 짚어대는 반박에 여러번 사과하기도 했단다. 은 처장은 "아이에게 사과를 한다고 해서 가정의 기강이 무너지는 게 아니다. 가정에서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을 유지하는 게 기강을 살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