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피해규모는 산만 안다.'
'집이 불타면 제 값 못하고, 공장에 불나면 공장주만 애가 탄다.'
'집회 군중 수나 해수욕장 인파는 셈하는 이의 눈맛에 달렸다.'
국내 화재 피해규모 산정이나 군중 수의 계산법은 비과학적이다. 이 같은 수와 양, 면적의 산정방식은 과학적인 산정기법이나 질높은 도구, 풍부한 예산 등이 뒤따르지 못하는 데 주 원인이 있다. 하지만 경찰, 지방자치단체, 소방 등 행정당국이 정확한 수치가 국민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린 탓도 있는 듯하다. 행정당국 상부로 올라갈수록 집회 참가자 수를 줄이거나 산불 피해규모를 축소하려는 흔적이 종종 나타나기 때문이다.
대형 산불에서 어떤 종류의 나무가 얼마나 탔는지에 대해서는 여간해서 알기 어렵다. 수종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조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불 피해면적도 소방당국이나 지자체 담당자들의 '눈대중'과 '경험'에 주로 의존하기 때문에 정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주택이나 공장 화재에 있어서도 입지에 따른 시세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 대구 외곽지나 서울 강남이나 부동산 구조물 재질과 소실면적만 같을 경우 피해액은 동일하다. 집회 군중 수 계산도 주로 육안에 의존하는데다, 조사시점을 비롯한 다른 많은 변수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재미있는 '수와 양의 계산학'이다.
◆눈대중으로 추산하는 산불 피해
지난달 10일 낮 경주시 동천동 보문관광단지 진입도로 갈대밭에서 발생한 산불은 임야 13ha(경주시 발표)와 소나무·벚나무·잡목 등 4만5천여 그루를 태우고 4천300만원(소방서 추산)의 재산 피해를 냈다고 대다수 언론은 보도했다. 대구경북을 포함해 3개 광역시, 2개 광역도, 31개 시·군 국유림 관리를 맡고 있는 남부지방산림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관할 지역내 연평균 산불 발생건수는 9건, 피해면적은 24ha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피해면적과 피해액, 피해그루 수는 정확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이다. 우선, 소방서는 산불 피해면적 이외에 피해액과 피해그루 수를 산정하지 않는다. 소방기본법이나 화재조사보고 규정에도 '산하는 피해금액을 계산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피해면적도 임야대장이나 지적도 등을 활용해 실측하지 않고, 육안으로 관측한다. 대구 소방서 관계자는 "소방헬기에서 산봉우리 면적을 감안해 눈으로 면적을 추산한다."고 말했다. 눈대중과 경험에 의한 방식을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피해그루 수는 지방자치단체의 계산을 원용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피해면적, 피해그루 수, 피해액을 산정한다. 피해액은 불탄 수목과는 상관없이 1ha당 조림단비 333만1천원을 적용한다. 피해면적의 경우 산 정상을 기준으로 해 역시 육안으로 평면적을 추산한다. 눈으로, 그것도 굴곡이 있는 산을 평면이라고 가정해 계산한 면적이 실제 면적에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을까. 피해그루 수도 대개 표준지 10㎡ 이내 그루 수를 파악한 뒤 전체 면적을 감안해 계산한다. 수종의 밀집도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방식이다. 나무 종류는 표준지내 평균 분포비율을 구분해 바늘잎나무(침엽수), 넓은잎나무(활엽수) 등으로 추산하되 구체적 수종은 조사하지 않는다. 때문에 소나무 몇 그루, 벚나무 몇 그루 하는 식으로 발표하는 것은 대부분 엉터리다. 눈대중으로 하는 피해면적, 수목 피해와 입지를 감안하지 않은 피해액 산정 등도 허점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시가(時價) 반영되지 않는 주택·공장 화재 피해
경찰과 소방당국은 지난해 3월 발생한 코오롱유화 김천공장 화재 피해액을 25억원으로 추정했다. 또 2007년 9월 1개 동 부직포 제조공장과 창고에 있던 제품을 태운 한일합섬 대구공장의 불 피해액에 대해 회사측은 100억원대로 주장한 반면, 소방당국은 동산 28억원, 부동산 12억원 등 40억원 규모로 잠정 집계했다.
소방당국은 주택화재 피해규모와 관련, 한국감정원의 신축단가표를 반영한 소방방재청 '화재정보시스템'을 활용한다. 여기에는 부동산의 구조물 재질(슬라브, 기와, 콘크리트 등)에 따라 ㎡당 주택단가를 담고 있다. 계산방식은 신축단가×소실면적×(1-/내용연수)×손해율이다. 내용연수는 구조물의 수명을 말하고, 손해율은 전체 구조물에서 소실된 비율을 말한다. 콘크리트 구조물은 통상 내용연수를 50년으로 잡고 있다. TV, 냉장고, 컴퓨터 등 동산의 경우 내용연수를 10년으로 잡고, 구입가격에서 사용연수에 따라 감가상각을 한 액수를 산정한다.
공장 화재의 경우 건물 피해액 산정방식은 주택과 동일하다. 하지만, 공장 내부 기계와 설치물의 경우는 얘기가 달라진다. 내용연수와 감가상각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어 결국 조사자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특히 부동산의 피해액 산정은 시가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맹점이 있다. 대구와 서울, 대구 수성구와 동구 등 입지와 상관없이 구조물 재질과 소실면적이 같다면 피해액은 모두 같을 수밖에 없는 계산법이다. 경찰도 과거 화재지역 파출소 등지에서 부동산과 동산 피해액을 산정했었다. 그러나 피해 보상, 보험료 산정 등 법적 문제가 불거지자 약 10년 전부터 화재피해액 조사를 하지 않고 소방당국에 의존하고 있다.
◆변수 많은 해수욕장 인파
지난해 8월 3일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인파 90만명, 8월 15일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루 수십만명에서 100만명까지 몰리는 인파에 대한 계산은 어떻게 할까. 부산 해운대구청 관광시설관리사업소 해수욕장운영팀은 몇 년 전 정확한 피서객 수 집계를 위해 항공촬영까지 고려했었다. 하지만 몇 가지 이유로 시행하지는 않았다.
해수욕장 인파 집계는 일단 주간과 야간으로 나눈다.
주간의 경우 하루 네 차례 조사를 벌인다. 해수욕장을 드나드는 피서객이 하루평균 네 번 순환한다고 추정한 것. 한 차례 조사에서 일단 백사장 안에 3개 지점 각 660㎡내 사람 수를 파악한다. 3개 지점의 사람 수를 합쳐 평균을 낸 뒤 그 인원을 다시 1㎡당 인원으로 계산한다. 여기에 전체 백사장 면적 5만8천400을 곱하고, 다시 순환횟수인 4를 곱하면 주간 백사장 인파가 집계된다. 여기에 수영구역내 인원, 순환도로 뒤편 녹지대 인원까지 합하면 주간 인파가 된다는 것.
야간 인파의 경우 주간 인파의 최소 10%(비올 때)에서 최대 120%(축제 기간)로 계산한다.
하지만 입장료를 포함한 티켓을 받지 않는 한 이 계산에도 맹점은 많다. 우선 하루 4차례 순환한다는 것은 추측일 뿐이다. 해수욕장 인근에서 1박이나 2박을 할 수도 있고, 2,3시간 피서를 하다 돌아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변수도 많다. 밀물과 썰물 때 백사장 면적과 수영구역 면적은 달라질 수 있다. 게다가 야간 인파를 주간 인파의 일정 비율로 계산하는 방식도 정확성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
◆널뛰기 하는 집회 군중 수
지난해 5월부터 서울에서 열린 미국산 소고기 반대 촛불집회에서는 주최 측과 경찰의 집회참가자 수 집계에 큰 차이를 보였다. 5월 30일은 경찰 추산 5천명, 주최 측 추산 2만명이었고, 6월 10일엔 8만명 대 70만명으로 무려 9배가량 차이를 나타냈다.
서울 경찰은 대개 3.3㎡당 8명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 인원에 전체 면적을 곱한 것. 하지만 상부 보고과정에서 인원이 갈수록 줄어들기도 한다는 게 경찰 일각의 이야기다. 경찰 추산도 허점이 많지만, 주최 측 집계도 비과학적이기는 매한가지다. 서울시청 잔디광장에 시민들이 가득차면 ○명, 벽돌이 깔린 부분과 인도까지 차면 ○명 등 하는 방식이다. 당시 20여명의 집계요원을 동원해 집회장 주변 지형지물을 분석한 뒤 비슷한 규모의 이전 집회와 비교해 인원을 추산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경험칙에 불과했다.
대구를 비롯한 소규모 집회 참가자 수 계산에서 경찰은 더 비과학적이다. 대구 경찰 정보과 한 관계자는 "집회 인원이 수백명에서 많아야 수천명이기 때문에 주로 눈대중으로 계산한다."고 말했다. 참가인원 10명을 한 그룹으로 본 뒤 이 기준으로 눈대중을 통해 그룹 수를 곱한다는 것. 그나마 이렇게 계산된 수도 경찰서-지방경찰청-경찰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20~30%씩 축소될 수 있다고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지난해 6월 10일 촛불집회 당시 일부 네티즌들은 원거리에서 찍은 디지털 사진의 화소를 컴퓨터로 분석, 여기에 나타난 촛불 광점(光點)을 참가규모로 내세우기도 했다. 그나마 경찰이나 집회 주최 측보다 훨씬 과학적이었다. 하지만 사진 속에 전체 시위대를 다 나타낼 수 없었고, 해상도와 감도 등에 따라 광점이 모든 촛불을 반영하는데 제한이 있을 수 있다는데 일부 허점은 있었다. 게다가 촛불을 들지 않은 참가자도 포함될 수 없었다는 것.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