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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의 시와 함께] 「낙산사 가는 길 11」/ 유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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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그토록 많이 온 날

깨끗한 도화지에

몽당연필 침 묻혀

눌러 그은 줄처럼

지나가는 기차

지구 한가운데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이 시의 외양은 동시적 모티브이다. 시적 발상도 그러하다. 눈이 많이 내린 강원도 산간을 칙칙폭폭 지나가는 기차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그 선명성은 눈이라는 배경과 선 하나로 그은 기차의 대비에서 나온 단순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시인이 들여다보는 사물에 대한 따뜻함이 시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눈은 확실히 정화의 이미지이다. 눈은 모든 것을 덮어버리거나, 아니면 '눈 그토록 많이 온 날'이 '깨끗한 도화지'와 에콜이 되는 유년의 맑은 심상에 접근하는 이미지이다. 그러므로 아이의 심상으로 보는 기차란 수없이 많은 사람이 타고 있는 탈것이 아니라 하나의 선이다. 근심은 여기서 생긴다. 시인이 보기에 그 기차는 결코 하늘로 날아가지 못하는 지상의 복잡한 탈것이다. 아무리 눈이 쌓여서 세상을 희고 깨끗하게 정화시켜도 기차는 날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기차는 시인의 가슴 깊이 움푹 파일만큼 하나의 선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몽당연필로 쉽게 지워지지 않는 침을 묻혀 그은 굵은 선이 된 기차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애처롭다는데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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