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줄로 읽는 한권]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보다 성숙해져야 한다. 나이 들어서도 젊은 시절이나 다름없이 생활의 도구인 물건에 얽매이거나 욕심을 부린다면 그의 인생은 추하다. 어떤 물질이나 관계 속에서도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즐길 수도 있어야 한다. …인생의 황혼기는 묵은 가지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꽃일 수 있어야 한다. 이 몸은 조금씩 이지러져 가지만 마음은 샘물처럼 차오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무가치한 일에 결코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본문 89쪽 중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법정 글/문학의 숲 펴냄/1만1천500원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눈을 밖으로 팔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기 발 뿌리를 늘 살펴야 합니다. 남이 못했든 잘했든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삶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과연 이 대지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맑고 향기롭게 살고 있는가. 그것을 점검해야 합니다. 땅의 덕을 배워야 합니다."-용서는 가장 큰 수행 중에서-

『一期一會』법정 글/문학의 숲 펴냄/389쪽/1만5천원

나이를 먹으면서 거울 보기가 두렵다. 자신의 얼굴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도무지 자신이 서지 않는다. 눈 앞에 지천명(知天命)을 마주하고서도 거울을 볼 때마다 번민에 휩싸이는 것은 여전히 가지지 못한 것들과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집착하기 때문이다. 이룸과 가짐이 욕심에서 나온, 소리 다른 하나의 말임을 알기는 쉽다. 하지만 버리기는 어려운 이 미욱한 일상의 연속에서 법정 스님의 글은 이제 막 길어 올린 얼음장 같은 차가운 우물물처럼 맑고 향기롭다. 하지만 늘 사색의 빛으로 가득한 법정 스님의 글도 어떤 이들에게는 자칫 세월 좋은 객담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먹고사는 현실이 이렇듯 고통스러운데 무슨 '귀신이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비난은 한편으로 타당성이 있기도 하지만 "행복과 불행은 외부적인 상황이나 조건에만 있지 않고 내적인 수용, 즉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에 달려있다"는 스님의 법문을 읽어 가다 보면 버려야 할 것과 가져야 할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다가온다. 아침 신문을 읽다가 얼굴을 붉힌다. 봉은사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 49재를 앞두고 대한민국 검찰 중수부 소속 검사들의 봉은사 출입을 삼가 달라는 절 입구에 내건 현수막을 찍은 사진 때문이다. 고인의 죽음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질곡이며 불행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절집에서 세상사에 또다시 편을 가르고 나선다면 또 어찌할 것인가 싶다. 부처님의 뜻 또한 자비에 있고 고인의 뜻 또한 남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면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이 어떠해야 하는가는 명백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 또한 이룸과 가짐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기에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는 하다. 결국 얼굴이 붉어진 이유가 마주한 거울에 회색주의자의 어리석음이 먼저 보이기 때문이다.

전태흥(여행 작가'㈜미래티엔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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