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봉 선생님(역도 감독·이범수)은 역도 금메달 유망주였다. 그러나 팔을 다치는 바람에 88서울 올림픽 동메달에 그쳤다. 후유증으로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었다. 동메달에 그친 그에게는 연금이 없었고, 사람들 기억에서도 곧 사라졌다. 역도밖에 몰랐던 그는 할 일이 많지 않았다. 그는 술집에서 손님을 끄는 '삐끼' 노릇을 했고 술 배달을 했다.
전라남도 보성의 한 시골 중학교.
영자(조안)는 어머니 아버지 없이 홀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삼촌이 셋이나 있었지만 영자를 돌보지 않았다. 영자는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 급식으로 나오는 우유를 한 통 더 훔쳐 먹곤 했다. 어린 시절부터 많은 일을 한 덕분에 어깨는 튼튼했고 허리는 듬직했다. 여순(최문경)은 역도 선수로 성공해 아픈 엄마를 위로하고 싶었다. 빵순이 현정(전보미)은 누구도 봐주지 않을 뚱뚱한 몸으로 학교의 꽃미남 오빠를 좋아했다. 오빠의 관심을 끌기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이지봉 선생님은 역도협회 선배의 소개로 보성 여자중학교 역도 감독이 됐다. 역도부 창설 설명회에서 이지봉 감독은 역도의 장점과 단점을 낱낱이 열거했다. 한마디로 별볼일 없는 운동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게 별볼일 없고 위험한 운동이라고?'
설명회에 왔던 예비 지원자들은 떠나버렸다. 그러나 교감 선생님의 피나는(?) 노력과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역도부는 탄생했다.
이지봉 감독은 '흉내'만 내게 했을 뿐 역도를 가르치지 않았다. 역도를 가르치지 않으면서 취사 시설과 숙박 시설을 갖춰달라고 학교에 요구했다. 그가 취사 시설과 숙식 시설을 원했던 것은 가난한 선수 지망생들에게 밥과 잠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역도를 가르치는 대신 아이들에게 식사와 잠잘 곳을 주고 싶어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무사히 졸업해 진학하기만을 바랐다.
학교측이 일방적으로 출전을 결정한 대회에서 보성여중 역도부는 당연하게도 비참한 결과를 얻었다. 아이들은 역기를 든 채 자빠지고, 뒹굴고, 들어올린 역기를 어쩌지 못해 빙글빙글 돌다가 엎어진다. 쪼그리고 앉아 힘을 쓰다가 'X'을 싸기도 했다. 망신을 당한 아이들은 울면서 말했다.
"선생님, 어째서 역도를 가르쳐 주지 않으십니까. 역도를 가르쳐 주세요. 우리는 역도를 하고 싶어요."
선생님은 침통한 표정으로 답했다.
"하면 안 되는 운동이라서 안 가르쳐 준다. 써먹을 데가 없다. 금메달 못 따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밥벌이도 안 된다. 테니스나 탁구는 레슨이라도 할 수 있지만 그런 것도 없다. 몸만 다친다. 돈도 안 되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운동을 왜 해! (엉망으로 망가진)나를 봐라."
그는 비인기 종목 역도 때문에 망가진 자기 인생을 아이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눈물로 호소했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지금까지 우리가 불쌍해서 고아원을 운영하신 것이네요."
아이들에게 역도는 다만 하나의 스포츠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역도를 통해 세상을 들어올리고 싶었고 세상 속에 우뚝 서고 싶었다. 아이들의 실패를 바라지 않았던 선생님은 아이들이 '역도'가 무엇인지 알게 되자 결심한다.
'얻는 것이 하나도 없더라도, 누구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각오와 맹세'로 선생님과 아이들의 훈련은 시작됐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비지땀을 흘렸지만 웃음을 잃지 않았다. 비록 역도 선수이기는 했지만 공부를 게을리 하지도 않았다. 선생님은 '운동 선수들 무식하다'는 말을 듣기 싫다고 했다. 아이들은 역도에 관한 원서를 읽었다. 이지봉 선생님의 훈련에는 '몽둥이'가 없었다. 흔히 운동 선수들 훈련엔 '인격 모멸'과 '폭행'이 다반사지만 이들의 비지땀 나는 훈련엔 사랑과 신뢰와 웃음만이 가득했다.
일단 훈련을 시작하자 죽을 힘을 다해 가르쳤고 아이들은 따랐다. 선생님은 무거운 역기 앞에 선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들어야 할 역기는 너희들이 살아온 삶의 무게보다 가벼울 것이다. 세상을 들고 우뚝 일어서라.'
아이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말인 동시에 역도에 대한 세상의 무관심을 박차고 일어나 우뚝 서라는 말이다. 역기가 아무리 무거워도 아이들이 감당해왔던 삶의 무게보다 무겁지는 않다는 말은 실패한 역도 선수 이지봉 감독 자신의 회한,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온 아이들의 고통을 아우른다.
우리나라 대표 선수들은 흔히 '금메달만이 국민의 사랑과 관심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관중들은 '금메달'에만 환호한다. 금메달을 받지 못한 선수는 금방 잊히거나 비난의 대상이 되곤 했다. 지금까지 그가 감내한 고통과 외로움, 흘린 땀은 인정되지 않는다. 1등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영화 '킹콩을 들다'는 '금메달'이 목표가 아닌 '최선'이 목표라는 신념을 실천한 이지봉 선생님과 6명의 소녀들의 이야기다.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킹콩을 들다'의 종목이 '역도'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더 있다. 테니스도 농구도, 축구도 야구도 아닌 역도. 일등을 한다고 해도 쉽게 잊히기 십상인 역도, 그 재미없는 종목에서 그것도 동메달에 그친 사람…. 영화는 우리가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의 수고와 고통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조연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 인간에 대한 무한 사랑과 신뢰, 자신도 모르게 흘리게 될 눈물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다.
'킹콩'은 선생님의 별명이다. 심근비대증을 앓고 있던 선생님은 가슴이 답답해 스스로 가슴을 쳤고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은 그 모습이 마치 큰 고릴라, 즉 킹콩처럼 보인다고 그렇게 별명 붙였다. 더불어 제목 '킹콩을 들다'는 가느다란 팔로 거대한 '킹콩(세상)'을 들어 올린 역도 소녀들의 삶을 상징한다. 120분/전체 관람가/감독 박건용/이범수 조안 이윤회 최문경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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