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 만하게 되기까지 그렇게 긴 세월이 걸렸는데 내리막은 한순간이더군요."
14일 동산병원에서 만난 김영희(50·대구 북구 구암동)씨와 장미(25)씨 모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찍어냈다. 엄마가 울면 딸이 따라 울고, 딸의 눈시울이 붉어지면 그게 못내 안타까워 엄마가 울었다. 한동안 잠잠해졌다가 예전 일을 떠올리며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장씨는 자궁암을 앓고 있다. 지난해 2월 발병해 2년째 투병 중이다. 젊은 나이에 암을 얻어 그런지 치료는 쉽지 않았다. 건장한 체격의 장씨는 "아무리 독한 항암치료라도 얼마든지 견딜 수 있지만 치료비를 마련할 길이 없다"며 울었다. 벌써 방사선 치료만 30회, 항암치료도 20번 넘게 받았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아기를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견뎠다. 하지만 염치없는 암덩이는 자궁을 잠식한 것으로도 모자라 요도까지 퍼져나간 상태다.
장씨는 스물두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다. 남편은 장씨보다 열네살이 많았다. 난데없는 아버지의 교통사고로 운영하던 가게를 날리고, 부모님이 이혼하고, 가족이 머무를 집 한 칸 없어 뿔뿔이 흩어져 친척집과 친구네집 등을 전전하던 시절이었다. 장씨의 아버지는 2003년 심야에 유턴을 하던 중 진행하는 차를 발견하지 못해 부딪치는 사고를 냈다. 그 사고로 아버지는 하반신 감각이 없어지는 장애와 함께 우울증 등 각종 병을 앓게 됐고, 합의금과 치료비로 전 재산을 거덜낸 후 어머니와 이혼하고 말았다.
남편은 장씨에게 "결혼만 하면 아버님 사고 치료비도 거들고, 간호조무사 학원도 다니게 해 주겠다"고 말했다. 평소 간호사가 꿈이었던 장씨는 그 말을 믿고 2005년 결혼을 결심했다. 입 하나라도 덜어야 하는 처지에 공부시켜 주고, 처가 살림까지 도와준다는 남편감을 만난 건 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장씨는 결혼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걸핏하면 폭력을 일삼는 남편에게 시달려야 했다. 도저히 폭력을 견딜 수 없어 아이를 낳고 7개월 만에 도망치듯 집을 나와 별거를 시작했다. 아기를 뺏어갔던 남편은 한 달 만에 "키우기 힘드니 네가 키워라"며 아이를 덜렁 남겨놓고는 "이혼은 못해준다"고 사라져버렸다.
그러던 지난해 2월 어느 날, 갑자기 배가 뒤틀리듯 아프기 시작했다. 집 근처 병원에서는 "이유를 모르겠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지만 병원비 걱정이 앞서 이틀을 집에서 버티다가 끝내 응급실로 실려갔다. 그때 처음으로 자궁암 진단을 받았다. 길고 긴 투병생활이 시작됐다. 이혼만은 못해준다고 버티던 남편은 암에 걸린 사실을 알자 곧장 이혼에 동의하고 돌아서서 연락을 끊어버렸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받는 50여만원으로는 네살 난 아들과 두 모녀가 생활하고, 병원비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돈이 생기는 대로 병원비부터 대다 보니 가스·전기·휴대전화 요금이 몇 개월씩 밀렸다. 한때는 도시가스가 끊겨 겨울에도 냉방에서 잤고, 음식은 휴대용 버너로 해 먹었다. 휴대전화도 밀린 요금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끊어졌다. 주택공사의 주택마련자금 지원을 받아 겨우 마련한 전셋집마저도 2년간 이자를 제대로 내지 못해 밀린 돈이 200만원에 이른다. 이대로 가다간 어렵게 마련한 보금자리마저 내놓고 또 길바닥에 나앉아야 할 판이다.
장씨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병이 아니라 돈"이라고 했다. 암 치료를 그만둬야 하나 수백 번도 더 고민했지만 그녀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돈이 없어 치료를 계속하기 힘든 사정이지만, 아기를 생각하면 죽을 수도 없다. 어머니 김씨는 "한때는 식육점을 운영하며 노력하면 잘살 수 있다는 꿈이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답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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