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지정된 전남 담양군 창평면 삼지천 마을을 다녀왔다. 마침 '슬로시티 놀토 달팽이 시장'이 열려 전통가옥 관광 외에 비가 하염 없이 쏟아지는 가운데 면사무소 앞마당 정자에서 부추전과 맨드라미화전에다 막걸리까지 대접받는 호사를 누렸다. 음식을 준비해 준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매달 두 번째 토요일에는 '놀토 달팽이 시장'이 열린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주민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돼지 두 마리를 잡고 전을 부치는 등으로 화합을 다지는 날, '철철'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공짜'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었던 기분 좋은 하루였다. 운이 좋았던지 이날 의병장 고경명의 고택에서 양반다리를 한 채 그 후손으로부터 차를 공짜로 대접 받기도 했다.
슬로시티는 흙돌담길과 13여채의 전통한옥에다 전통 수공업, 조리법, 자연친화적 농법 등이 지정요건인 만큼 하드웨어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전통 엿'죽공예품 등 소프트웨어까지 외지인 및 외국인들에게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꺼리가 됐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돌아본 담양은 분명 주어진 자연환경 속에서 고장의 먹을거리와 지역 고유문화를 느끼며 쾌적한 삶을 영유하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그런데 지난달 제주 관광을 하고서는 우리 것의 소홀함에 대한 아쉬운 감을 떨칠 수 가 없었다. 주요 관광지로 돼 있는 '더 마(馬)파크'와 '삼국지랜드'는 적잖은 입장료(성인기준 각각 1만5천원, 1만2천원)에 모두 흥미는 제쳐 두고라도 등장인물과 내용에서 한국적인 면을 찾아볼 수 없다. 각각 몽골인 30명과 중국인 몇 명이 등장해 기마묘기와 얼굴변극, 차 따르기 시연을 하는 등 국제관광도시에서 우리 것이 아닌 외국의 것을 공연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에서 중국인들이 등장해 중국의 얘기를 극화해 보여준다는 것은 우습고도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가 영국 런던에서 왕실의 근위대 열병식을 보기 위해, 뉴질랜드에 가면 눈을 크게 뜨고 혀를 길게 내밀면서 앞가슴과 다리를 치며 상대방을 위협하는 원주민 마오리족의 공연 모습을 보기 위해 시간에 맞춰 찾아가는 이유는 가장 그 나라다운 것을 보기 위함이다.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에 온 이상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고, 또 갖기를 원한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8일 있은 외국계 호텔인 대구시티센터 노보텔 오픈 1주년 기념 만찬장.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우리문화를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줘 참석한 20여명의 외국인들은 물론이고 초청받은 100여명의 시민들도 많은 박수를 보냈다. "늘 대구와 함께, 직원들과 함께 발전하겠다"고 말해 온 노보텔의 티에리 르 포네 총지배인이 축하 공연으로 북난타공연을 선보인 가운데 참석자들이'두드림의 미학'에 반해 어깨를 함께 들썩거린 것이다.
이 건물주인 피에트로 A.도란 회장의 서울 집무실에는 한국 민속품이 가득하다고 한다. 우리 것이 그만큼 보유하고, 또 지킬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우리 문화의 위대한 힘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현대문명을 거부하고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추구하는 철학의 기본이기도 한 늘 고향같은 우리문화를 지키자는 것이다.
jsgold@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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