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자전거Ⅱ

30년 전 아이에게, 지금은 손자에게 "나는 자전거 스승"

4년 전 손자와 상주 자전거박물관에서 함께한 황순자씨
4년 전 손자와 상주 자전거박물관에서 함께한 황순자씨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패션 아울렛 올브랜 10만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원고 분량은 제한 없습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체육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정은경(대구 서구 비산7동)

다음주 글감은 '여름 휴가'입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자전거 경품 걷기대회 비 바람 뚫고 걸었지만 '낙첨'

한창 자전거에 관심이 많던 딸 설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자전거 타령을 해댔다. 2007년 김천시에서 하는 '건강걷기 대회'에 자전거 100대가 경품으로 걸린 것을 알고 온 가족이 건강걷기 대회에 참여하였다. 그런데 그날 태풍이 와서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데 우리는 자전거를 경품으로 타겠다는 생각에 온 식구가 그 비바람 맞으며 김천 종합운동장을 출발해서 예정보다 가까운 코스를 돌아 김천 종합체육관에서 행운권 추첨을 기다렸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서 많은 사람들이 집에 간 줄 알았는데 코스도 돌지 않고 중간에 돌아온 사람들이 체육관을 꽉 메우고 있었다. 개그맨인 '메기'(이상훈)가 와서 사회를 보고 추첨을 했다. 우리는 100대의 자전거 중 설마 한 대는 당첨 안 되겠나 싶어 기다렸다. 빨간 바구니 달린 자전거가 좋을까, 파란 바구니 달린 자전거가 좋을까 하며 끝까지 기다렸지만 우린 당첨되지 않았다.

옷과 신발이 젖어 발은 퉁퉁 불었고 딸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헛된 욕심을 부린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그후 친정 오빠가 쓰던 자전거를 한대 얻었는데 딸은 한두번 타더니 안 타고 세워 두었다. 아파트 주차장에는 타지도 않는 자전거가 자물쇠에 잠겨 녹슨 채 고물처럼 세워져 있다.

오월선(김천시 신음동)

♥아침마다 장거리 '드라이브'…비 오면 실내자전거

대구 사월동에 인접한 경산에는 아주 좋은 전용 자전거도로가 많다.

시청 앞 보건소 옆 남매지 못을 한 바퀴 돌고, 영남대학 캠퍼스와 삼천지 못을 돌아 연꽃을 보고 벚꽃길을 달려와서 경찰서 뒤 시민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 남천강변을 따라 옥곡동에서 대평동까지 달리면 새벽 6시, 나의 운동은 끝이 난다.

30년 전 나는 2세, 4세 아이들을 앞뒤로 태우고 대구 동성로에서 반고개까지 달렸다. 딸 6명 중에 나만 자전거를 탈줄 안다. 지금도 고교 시절에 오빠한테 자전거를 배운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지난봄 전북 군산에 있는 선유도에 갔을 때 자전거를 빌려 섬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젊은 새댁들도 나의 자전거 타는 모습을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요즈음 자전거 마니아들은 꼭 끼는 스포츠 바지에 가죽장갑, 선글라스, 폭신한 모자까지 쓰고 자전거도 무척 비싼 걸 타던데 꼭 그렇게 멋있게 차려야 하는지. 나이든 우린 모자 안경만 쓰고 폼이 안나도 마구 달린다. 요사이 장마철엔 실내 운동기구용 자전거를 탄다. 4년 전 손자와 함께 상주 자전거박물관에 가서 찍은 사진이다. 그날은 손자를 긴 자전거에 같이 태우고 다녔는데 이제 2학년이 되어 커버린 손자는 혼자서도 잘 탄다.

황순자(경산시 삼풍동)

♥내 나이 55세-건강나이 40대 초반…"자전거야 고마워"

"힘껏 밀어 봐라, 안 올라가잖아." 중학교 1학년 언니는 앞에서 당기고 5학년인 나는 뒤에서 밀어도 덩치 큰 자전거는 언덕을 쉽게 오르지 못한다. 아버지께서 외출한 틈을 타서 용기를 낸 자매는 자전거를 배우려고 끌고 나오긴 했지만 옆 대학교 운동장까지는 무척 힘이 들었다. 언니가 타고 내가 뒤에서 밀어주며 조금 배웠는데, 다음날 내가 타고 출발하는 순간 축구 골대에 부딪치고 말았다. 아픈 건 뒷전이고 휘어진 바퀴를 보는 순간 아버지 얼굴이 떠올라 덜컥 겁이 났다. 아버지께 혼이 난 후로는 다시는 자전거를 탈 수가 없었다. 성장해 가면서 가끔은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는 꿈을 꾸곤 했었다.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작은아들이 3학년이 되었을 때 "엄마, 형은 자전거를 잘 타는데, 나는 안돼." "운동장에 가서 엄마가 도와줄게." 의외로 쉽게 배우기에 "네가 5학년이 되면 엄마도 가르쳐줘야 돼"라며 우리는 약속을 했다. 그 약속 덕분에 2년 후 꿈 같은 자전거 배우기에 돌입했다. 아들이 뒤에서 잡아주면 운동장 스탠드를 밞고 출발했다 .어렵게 배워 1주일쯤 지나게 되자 도로에 나오고 싶어 병이 났다. 새벽에 혼자 도로에서 타다가 팔목을 다쳐도 한 달 동안 아무 소리 못했다. 다시는 못 타게 할까 봐.

그럭저럭 벌써 생활화된 게 20년이 되어간다. 지금 내 나이는 55세. 5년 전 골다공증 검사를 했을 때 40대 초반이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나이가 들수록 운동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더 격려해주셨다. 자전거야, 고마워. 내 건강을 지켜줘서.

여종희(대구 남구 대명4동)

♥충청도 고향에선 엄두도 못낸 자전거…경상도 시집와서 배워

고향인 충청도에서는 여자들이 시집가기 전에 자전거 타면 시집을 못 간다고 들었다. 그러나 경상도에 시집와 보니 애 어른 할 것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도 자전거 못 타는 사람이 없었다. 아침이면 학생들이 자전거로 통학을 하고 어른들도 자전거를 타고 들에 가는 걸 보고 나도 자전거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담벼락에 넘어져 팔 다리가 긁히기도 하고 달리다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면 그 자리에서 자전거를 패대기치며 멈추기도 했다. 그렇게 고생 끝에 자전거를 배워 조금 능숙해졌을 때 두 아들을 앞뒤로 태우고 하루에도 몇 번씩 동네를 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겁도 없이 앞뒤로 두 아들을 태우고 다녔는지 아찔한 생각이 든다. 자전거를 배워 우유 배달일도 했고 오토바이도 배워서 타다 지금은 운전을 배워 차를 타고 다닌다. 내가 차를 타고 도로에 올라가 보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정말 위험해 보인다. 차와 자전거는 서로 조심해야 할 상대인 것 같다.

함종순(김천시 개령면)

♥20리 길 통학하던 추억 지금은 출근으로 이어가

나는 시골에서 20여리 길을 자전거를 타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다. 이른 아침 자전거를 타고 들길에 가면 풀잎에 맺힌 이슬 방울이 상쾌했고 큰길에 접어들어서는 자갈길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신나게 달렸었다. 지금도 가로수가 조성된 자전거 도로를 달릴 때면 그때가 생각난다. 지금은 일주일에 3일 정도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한다. 그런데 며칠 전 일을 늦게 마치고 퇴근하려는데 너무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누군가 자전거 주차대에 세워둔 자전거의 자물쇠를 절단하고 가져가 버린 것이다. 내가 아끼는 애마 자전거를 가져가 버렸으니 여간 속상하지 않았다. 4년 정도 정이 들었는데 아깝다. 주기적으로 닦고 손질해 가장 눈에 띄었나 보다. 왜 하필 내 자전거를 가져갔는지 화가 났다.

내가 자전거를 구입하여 4년 정도 사용하고 손익계산을 따져 보니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것 하고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새로 자전거를 살 예정이다.

자연과 함께 숨을 쉬고 피부로 느끼며 몸도 마음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해지는 세상을 위하여 다같이 자전거를 사자. 그래서 이른 아침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려보자.

허이주(대구 달서구 용산2동)

♥타지 못해 끌고 다니던 자전거…지금은 힘차게 씽씽

내가 어릴 때, 윗마을에 사는 막내 외삼촌이 자전거를 타고 자주 놀러 오셨다. 호기심이 가득한 난 외삼촌 모르게 내 키보다 더 큰 자전거를 끌고 나와 자전거 바퀴 사이로 발을 집어넣고 내리막길에서 연습을 했다. 가만 있어도 가속도가 붙은 내리막길에서 자전거를 타다 언덕 아래로 굴러 피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불호령을 듣고 다시는 자전거를 가까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그 후론 외삼촌도 자전거는 집에 두고 걸어서 놀러 오셨다. 이렇게 자전거와의 인연은 일주일 만에 끝이 나고 말았다.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게 된 것은 3년 전 남편 직장 체육대회에서 행운권 추첨으로 자전거를 거머쥐면서부터다. 저녁마다 운동장에서 자전거와 씨름을 하게 되었다.

자전거 타기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종아리는 페달에 부딪쳐 시퍼런 피멍이 들었고 그걸 본 남편은 길이 좋은 금호강 둔치로 가자고 했다. 자전거를 배우러 나왔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자전거를 계속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계속 끌고 가는 나를 보더니 할 말이 없다는 듯 웃기만 하던 남편이 큰 배려를 하는 것처럼 자전거를 타고 멋지게 달려가는 것이었다.

남편에게서 자전거 배우기를 포기한 나는 용기를 내어 친구네 집에 자전거를 타고 놀러 가기로 마음먹고 출발했다. 사람들이 많아 자전거를 타고 가기가 너무 어려웠다.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할 친구의 집을 20분이 더 걸려 도착하자 친구는 오다가 애인이라도 만났냐고 핀잔을 주었다. 사연을 들은 친구는 박장대소하며 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 타기를 가르쳐 주었다. 자전거 배우기는 남편보다 친구가 훨씬 좋다. 자전거에 몸을 싣도록 친구가 함께 애써 주었기에 지금 난 자전거에 몸을 싣고 페달을 힘차게 밟을 수 있는 것 같다.

이동연(대구 북구 복현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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