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기까지 손이 88번은 가야 된다는 농사가 쌀농사였다. 米(미)자를 破字(파자)하면 八十八(팔십팔)이라는 것은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만큼 힘들고 어려웠던 쌀농사는 기계화 덕분에 이제 가장 손쉬운 농사가 됐다.
수리개발 사업으로 天水畓(천수답)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당장 지난봄의 그 극심했던 가뭄 속에서도 큰 어려움 없이 모내기를 하지 않았던가. 10년 전만 해도 이 정도 가뭄이었다면 모를 심지 못한 들녘이 여기저기 널렸을 것이다.
농업 기반조성 사업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는 얘기인데, 문제는 영농 규모화다. 우리 농가의 경영규모는 아직 영세해서, 경북지역의 경우 농가 평균 경영규모가 1.3㏊에 불과하다. 농기계나 수리시설 등은 한 농가가 10㏊, 20㏊ 농사를 거뜬히 지을 수 있도록 갖춰져 있는데도 말이다. 김영삼 정부 이래 엄청난 예산을 투입한 농촌살리기 정책이 적어도 쌀농사에서만큼은 절반의 성공밖에 못 거뒀다는 평을 듣는 이유에는 이런 사정도 한몫하고 있다.
그래서 쌀전업농 중에는 규모화 정책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많이만 지으면 돈이 되는 길은 열려 있는데 정작 많은 논을 갖출 수 있는 환경이나 제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외국에선 거의 무이자로 빌려주고 있는 토지 구입'임차자금에 우리는 연 2%의 이자를 받고 있다는 것을 작은 사례로 들기도 한다. 쌀전업농들의 모임인 (사)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의 입회 자격이 자경 농지 2㏊인데, 평균 경영규모는 경북만 해도 겨우 그 배인 4.2㏊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들며 규모화가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정부로서는 농촌 인구의 태반을 차지하고 있는 高齡(고령) 농업인을 비롯한 영세농의 보호 역시 버릴 수 없는 정책 목표일 것이다. 이래서 김영삼 정부는 규모화를 추진한 데 반해 김대중 정부는 중소농 보호정책을 강하게 폈다. 지금 정부가 내놓은 농업선진화방안의 핵심은 경쟁력 확보인데, 이는 쌀농사에서는 규모화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30, 31일 안동에서는 2007년 포항에 이어 제2회 경북 쌀전업농 회원대회가 열려 2천여 농업인들이 농한기의 여유를 모처럼 즐겼다. 하지만 이들 머리 위에는 쌀 소비 감소와 가격 하락으로 인한 쌀농사 위축, 자주 바뀌는 정부 정책 방향과 지원 축소에 대한 걱정과 불안의 그림자가 어른어른하는 듯했다.
이상훈 북부지역본부장 azzz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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