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2년부터 1921년 사이 인도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20%나 하락했다. 1875년부터 1900년 사이 발생한 사상 최악의 기근 때문이다. 이 기간 중 심각한 가뭄이 있었지만 집단 餓死(아사)라는 재앙은 전혀 '자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영국의 식민자들이 강요한 사적 소유와 경쟁 체제가 초래한 인도 촌락 공동체의 파괴가 그 원인이었다.
단적인 예가 공유지의 강탈이다. 공유지는 인도 촌락공동체의 생명선이었다. 공유지는 사료용 건초, 연료로 쓸 나무와 소똥, 거름으로 사용할 똥과 나뭇잎, 마실 물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인도 농민들에게 공급했다. 영국은 이를 사유재산이나 국가독점자산으로 전환해 버렸다. 이제 공유지에서 생활에 필요한 자원을 얻으려면 일일이 세금을 내야 했다. 그 결과 농민들의 삶은 뿌리째 뽑히게 됐고 약간의 가뭄만 닥쳐도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 사태가 일반화된 것이다.('엘니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마이크 데이비스)
이는 영국의 지배 기간 동안 인도가 겪은 사회 전반적 재난은 일부 경제 수치상의 개선을 훨씬 능가한다는 것을 뜻한다. "경제적 돈 계산의 차원에서 보자면 인도는 아마도-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분명히-이 자유무역의 혜택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차원에서 보자면 인도는 사회 조직이 파괴당하는 재난을 겪게 됐고…사람들의 저질화라는 승냥이에게 먹잇감으로 던져지고 만 것이다."('거대한 전환''칼 폴라니)
이 같은 주장은 일제의 식민 통치가 한국 근대화의 초석이 됐다는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를 반박할 수 있는 좋은 시각을 제공한다. 사회'문화 전반에 파국이 나타난 것은 식민 지배를 경험한 모든 사회의 공통된 현상이다. 이는 일제의 지배가 가져온 일부 경제 지표상의 발전이나 개선보다 우리 민족 전체의 사회'문화적 손실과 자체적 근대화 역량의 퇴보가 훨씬 더 치명적이었다는 것을 뜻한다.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이를 간과하고 있다. 통계 수치상의 개선을 앞세워 식민 통치가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주장은 가증스런 속임수다. 의도적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학자적 자질 부족이다. 광복 64주년이 넘었으나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여전히 식민사관의 논리를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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