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단결을 유지하며 서양의 침략을 막으려면 선두에서는 맹주가 필요한데… 일본이야말로 그 맹주가 될 수 있으며… 고루함을 벗어나지 못한 중국과 조선은 일본과 대등한 입장에 서는 협력자가 될 수 없다." 일본 메이지 시대 사상가로 탈아론(脫亞論)을 주창한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한일수호조약 체결을 맞아 1882년 시사신보(時事新報)에 기고한 '조선과의 교제를 논함'이란 글의 일부이다. 나중에 그의 이 같은 '아시아 멸시론'은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들에게 시련을 안겨줬다.
일본을 보는 또 하나의 입장이 있다면 그건 그네들의 말에 기인한다. 일본말에는 상황에 따라 마음상태를 나타내는 '다테마에'(立前)와 '혼네'(本音)라는 것이 있다. '다테마에'가 '겉으로 내세우는 말'이란 뜻의 명분적인 의미를 지닌다면 '혼네'는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란 뜻이 강하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로서는 일본을 볼 때 어떤 때가 '다테마에'이며 어떤 때가 '혼네'인지를 구별할 줄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일본이 '8'30 중의원 총선' 이후 내치와 외교에서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54년간 일당 독주 체제 속에서 군국주의적 망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자민당을 제치고 정권 교체를 이룬 민주당이 총선 승리 후 주변국을 향해 처음 내뱉은 말은 우애를 바탕으로 한 '입아론'(入亞論)이다. 앞으로는 아시아에 속한 국가로서 아시아의 발전과 우호선린 관계에 힘쓰겠다는 것이다. 여기엔 오랜 경기 침체로 인한 일본 국내의 빈부 격차의 확산과 팍스 시니카(중국 중심의 세계 평화 질서 개편)를 모색하는 중국을 견제하고 또 나름의 우위를 확보하려는 속내도 없지 않다.
진정 일본이 입아론에 입각한 아시아의 공존과 번영에 한몫을 하자면 성신(誠信)의 '혼네 외교'가 마땅하다. 그래서 16일께 총리로 지명될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그렇지만 백번을 양보한다 하더라도 이웃 일본의 대외 정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볼 수만은 없는 이유가 있다. 19세기 말인 그때나 21세기 초인 지금, 주권국가 간 역학 관계를 가늠하는 외교에서 최종적인 행동의 근거는 힘의 논리이고 국제사회에서 약육강식은 그저 감춰진 질서일 뿐 사라진 유물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우문기 교정부차장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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