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재미있다. 가슴 진한 감동도 있고, 하마터면 침 튀어나올 뻔할 정도로 웃기는 장면도 많다. 한마디로 유쾌한 영화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다지 웃길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재밌다고 깔깔, 하하 웃고 난리였다. 왜 그랬을까? 대상이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대한민국 대통령'. 일반 소시민이었다면 전혀 웃기지도 않을 장면들이지만 '청와대'라는 그 높은 곳(?)에 사는 어른들의 이야기이다보니 그들의 작은 몸짓 하나에도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바꿔 말하면 국민(관객)이 생각하는 대통령이 얼마나 경직되고 엄격한 모습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감독은 이 점을 잘 파고들었다.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 '굿모닝 프레지던트'. 장진 감독이 들려주는 청와대와 대통령 이야기를 들어보자.
◆로또에 당첨된 대통령
임기 말년 대통령 김정호(이순재)는 민주화 운동을 했던 대쪽 정치인이다. 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 자리에서 측근을 다 물리치고는 난데없이 "맥주나 한 잔 하자"고 말한다. 야당 대표는 "아저씨는 대낮부터 웬 술이냐?"고 핀잔을 주지만 대통령은 "임마, 젊은 놈이 무슨 겁이 그렇게 많아"라며 되받아친다. 알고 보니 야당 대표는 함께 민주화 운동에 청춘을 바쳤던 친구의 아들. 대통령은 노련미를 발휘하며 젊은 야당 대표의 약을 슬슬 올린다. 급기야 대학 시절 자신의 딸과 야당 대표가 만났던 게 아니냐고 슬쩍 떠보자 야당 대표는 안 마시겠다던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켠다. 영수회담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실제 국정 운영이 이렇게 된다면 어떨까? 허구한 날 민생을 외치지만 정작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산적한 현안을 외면하는 정치권. 차라리 맥주 한 잔 기울이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풀어보는 것도 나쁠 것 없겠다싶다. 노련한 대통령에게 위기가 닥친다. 우연찮게 응모한 로또가 1등에 당첨, 244억원 대박의 주인공이 된 것. 기쁨도 잠시뿐이다. "당첨되면 국민을 위해 쓰겠다"며 호언장담했기 때문이다. 로또가 당첨되던 순간 너무 기쁜 나머지 혈압이 올라 쓰러질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껏 말 바꾸기는 우리 정치인의 전매특허 아니던가. 과연 대통령 김정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첫사랑에 설레는 꽃미남 대통령
김정호의 뒤를 이은 미남 대통령 차지욱(장동건). 앞서 영수회담 자리에서 열받은 나머지 맥주를 들이켰던 바로 그 야당 대표다. 일찍 아내와 사별한 뒤 혼자서 어린 아들을 키우며 직접 마트에서 분유와 기저귀를 사는 인물. 영화 속에서는 대미, 대북, 대일 관계의 줄다리기 속에서 강경한 외교 스타일을 지켜내는 대통령으로 등장한다. 서민정치를 한답시고 어느 날 찾아간 시장에서 난데없이 한 젊은이의 습격을 받는다. 총이나 칼을 끄집어내는 줄 알았더니 대통령에게 달려든 그 청년은 뜬금없이 플래카드를 펼쳐보인다. 내용은 더 가관이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대통령의 신장 한쪽을 달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특이 체질이어서 자기 아버지에게 장기 기증을 할 수 있다는 것. 수술비를 보태달라는 것도 아니고 갑작스레 대통령의 콩팥을 내놓으라니. 때마침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을 치던 때. 참모진은 어차피 검사해 봐야 장기이식 부적격 판정이 나올테니 지지율도 끌어올릴 겸 대통령에게 조직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한다. 대통령의 친구인 한 참모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젊었을 때 정치는 어차피 쇼라고 했잖아. 우리도 쇼 한 번 해보자." 글쎄 과연 그게 쇼로 끝날까? 전직 대통령의 딸이자 첫사랑인 이연(한채영)과의 러브 라인도 영화 내내 관객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골칫덩이 남편을 둔 여성 대통령
한경자(고두심)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여성답게 교육과 서민 생활 안정에 관심이 많은 대통령이다. 국민들의 지지율도 높다. 한경자 대통령도 위기에 직면한다. 빡빡한 청와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서민 남편 창면(임하룡) 때문이다. 고향 친구들과 밖에서 술 한 잔 거하게 마신 뒤 청와대로 쳐들어온다. 고주망태가 된 친구들은 외친다. "대통령 제수씨가 차려주는 술상 좀 받아보자." 이쯤은 사소한 에피소드일 뿐. 정작 대형 사고는 엉뚱한데서 터져나온다. 정부가 추진 중인 대규모 개발 예정지의 땅을 사들인 것. 나중에 아내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면 농사나 짓고 살자고 산 땅인데 마침 그 정보가 '저격수'로 불리는 한 야당 의원에게 흘러들어갔다. 이튿날 대통령의 생일날 아침, 조간신문에 이 내용은 대서특필되고, 야당은 대통령 탄핵감이라며 떠들어댄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편은 한국 고위층과 해외 귀빈들이 한데 모인 대통령 생일 축하연에서 "경자야, 이혼하자!"라고 외친다.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이혼 스캔들이 벌어질 판이다. 참모들도 이 참에 사고뭉치 대통령 남편을 정리(?)하는 게 좋다고 말하는데.
◆조리장에게 자문을 구하는 대통령들
영화 전개는 사뭇 빠르다. 러닝 타임 132분 동안 대통령 세 명의 모습을 보여준다. 15년의 역사를 압축했다. 사실 역사라기보다는 '청와대 에피소드'라고 부르는 게 걸맞을 듯 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청와대 수석 조리장이 만난 대통령 3명의 이야기다. 영화 막바지에서 조리장은 영화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으로 나오지만 사실 그는 대통령의 인간적인 모습을 최측근에서 지켜본 한 사람일 뿐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과연 어떤 판단이 옳을지 답이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멘토(mentor)다. 청와대 수석 조리장은 대통령 3대를 이어가며 이 멘토 역할을 한다. 그 똑똑한 청와대 참모들을 제치고 왜 조리장에게 답을 구할까? 영화는 이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어떠한 정치적 판단이나 당리당략에서 벗어난 지극히 소시민적인, 그리고 그저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등장하는 것이 조리장이고, 그는 대통령들에게 매우 상식적인 수준의 답을 해 준다. 바로 그것이 정답인 것이다. 한밤중 조리사들끼리 화투를 치는 조리실에 난데없이 찾아와서 라면을 끓여달라는 대통령, 끊었던 담배 한 개피를 달라는 대통령, 그리고 조리장과 함께 멸치를 다듬으면서 인생 선배이자 국민의 한 사람의 조언을 구하는 대통령이 나온다. 한마디로 인간적인 대통령의 모습들이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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