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돼지, 밥 바꿔 먹는 희한한 세상
김휘동 안동시장
두메산골 동·식물과 더불어 생활한 그리운 시절을 생각해 본다. 당시(1950~1970년대) 산에는 다양한 동물이 살아가도 농작물에 치명적 피해를 입히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지금보다 오히려 덜 우거진 산속이었지만 도토리를 비롯한 수많은 열매와 먹이사슬이 보존돼 있어 삶이 자연스러웠다.
아기돼지를 거느린 멧돼지가 출몰해도 사람이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서로 상대를 존중하며 공생하는 평화가 지속되고, 농작물은 아예 외면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최근 멧돼지 등 동물들의 입맛이 변하고 있다. 또 흉포화되고 있다. 식인 멧돼지와의 숨막히는 사투가 그려진 영화 '차우'처럼 멧돼지의 횡포가 도심과 농촌 곳곳에서 크게 늘고 있다.
맹수의 인간 습격시대인가? 일본에서는 곰이, 한국에서는 멧돼지가 사람들을 습격하는 사건들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 종로에 출몰하는가 하면, 멧돼지에 받혀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사건도 생겨나고 있다.
농작물 피해를 주지 않는 야생 멧돼지의 적정 밀도는 1㎢에 1.1마리지만 최근 들어 3.4마리로 증가하면서 먹이경쟁에 밀리는 멧돼지들은 도심까지 출몰하고 있다.
특히 멧돼지들이 농작물을 마구 파헤치는 바람에 농민들의 시름이 이만저만 아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무덤마저 파헤쳐 먹이를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멧돼지는 별도로 허가를 얻어야 포획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해대책 강구에 어려움이 많다.
심지어 군부대에 멧돼지가 나타나 기물을 파손하기까지 했는데도 야생동식물 보호법 때문에 총을 들고도 멧돼지를 잡을 수 없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들린다. 지난 한 해 동안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액 138억원 가운데 40%가 멧돼지에 의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멧돼지의 피해가 늘어나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웰빙시대 건강을 챙기고자 등산을 하면서 돼지의 먹이인 도토리나 칡뿌리 같은 산야초, 파충류들을 남획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돼지가 가장 좋아하는 도토리는 향약구급방(1417년)에서 '저의율'(猪矣栗)이라 해 '돼지 밥'으로 전해오고 있다. 우리말로도 돼지를 뜻하는 '돝'에서 '도톨'로 변해 접미사 '이'가 결합해 생성된, 말 그대로 돼지의 밥이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새벽부터 전등을 들고 인근 산의 도토리를 싹쓸이하고 심지어 휴일에는 '도토리 꾼'들이 온 산을 누비며 돼지의 밥을 모조리 주워가고 있다.
이렇듯 사람들이 돼지의 밥을 모조리 쓸어가는 바람에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어미돼지가 새끼돼지들을 이끌고 '사람의 밥'인 곡식이나 과일을 먹어치우고 있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돼지의 밥을 뺏어 먹고 반대로 돼지가 사람의 밥을 훔쳐 먹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인간과 영역싸움에 들어간 멧돼지들을 산속으로 되돌려 보낼 특단의 조치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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