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여론조사 기관의 대표는 12년 전 대통령 선거 때의 참담한 경험을 잊을 수 없다. 어느 신문사의 여론조사를 맡았던 그를 어느 날 신문사 사주가 불렀다. 여론조사 회사에 특정 후보의 친인척이 관련돼 조사 결과를 조작하고 있다며 당장 조사를 그만두라고 했다. 변명도 통하지 않았고 조사를 조작하는 회사로 낙인이 찍혔다. 그러나 선거 결과 대통령에 당선된 후보는 그 회사가 우세를 예측했던 이였다.
5년 뒤 대통령 선거 때 모 정당의 싱크탱크를 맡았던 분도 곤경을 치렀다. 소속당의 후보가 열세라는 조사 결과를 보고할 때면 지휘부의 문책을 피할 수 없었다. 숨어 있는 표를 찾아내지 못하고 민심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는 질책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소속 당 후보의 패배로 끝이 났다.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 직후 여론조사 기관들은 후보들은 물론 조사를 의뢰한 언론사와 대중들로부터 엉터리라는 뭇매를 맞았다.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결과가 엄청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조사에 응한 유권자들이 속마음을 숨겼다며 억울해했지만 책임은 그들의 몫이었다.
1824년 미국 대통령선거 당시 처음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신문사는 자사 기자를 현장에 보내 선거 결과를 예측했지만 실패작이었다. 민주당 루스벨트 당시 대통령과 공화당 후보가 맞붙은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의 승리를 예상한 신문사는 틀린 조사 결과로 망신을 사다 결국 폐간하고 말기도 했다. 무려 1천만 명에게 예상지를 보내 이 중 230만 장을 반송받은 결과였지만 표본 추출에 실패한 탓이었다.
이틀 전 치러진 재보선 결과의 성적표도 여론조사를 담당한 기관들에게 쓴맛을 안겼다.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승패가 크게 엇갈린데다 득표율도 오차범위를 벗어났다. 선거 결과 승리한 경우에야 질책이 덜했겠지만 패배한 지역에서 쏟아진 비난은 적지 않았을 터다.
정당의 여론조사는 자신들의 열세 지역을 보강하거나 우세 지역을 독려하기 위해 실시하지만 상대에 대한 마타도어 전략으로도 활용된다. 그러나 조사의 근본은 일단 정확성에 있다. 빗나간 예측은 조사에 응한 유권자의 마음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지지 후보나 정당이 확실치 않다는 말이다. 여론조사의 빗나간 예측은 결국 신뢰받지 못하는 정치권의 책임이 아닐까.
서영관 논설위원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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