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은 '악몽의 해'로 기억될 것이다. 제발 어느 날 문득 이 악몽에서 깨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그렇게 힘든 시절을 보내기도 했었지"라고 웃으며 옛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참담한 마음에 막막해진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리고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봐도 답답함이 풀리지를 않는다.
남편(55·대구 달서구 성당동)은 18년 전부터 다리를 절었다. 관절에 이상이 와 지체 4급 장애인이 된 것이다. 게다가 B형 간염도 가지고 있어 평생을 조심하면서 살아야 했다.
남편이 일을 할 수 없으니 평생 생계는 나(김은숙·가명·55)의 몫이었다. 작은 밥집을 운영해 가며 아들 둘과 딸 하나를 키웠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끼니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동네 부녀회 활동을 통해 조손가정과 홀몸노인들을 돌보는 봉사활동도 오랫동안 해 왔었다.
남편도 틈나는 대로 거들었다. 많이 베풀지는 못해도 가진 능력으로 조금이나마 남들을 위하고 살 수 있어 좋았다.
그러던 중 올 3월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시집가 아이 둘을 낳고 살던 딸(33)이 위암 말기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것도 둘째를 낳자마자 채 100일남짓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아기를 낳고 난 뒤 소화가 잘 안 된다는 딸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산후라 진단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100일이 지나고 다시 와 보라"고 했었다. 그리고 후에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까지 병이 악화된 후였다.
남편과 나는 딸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다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몸이 불편한 남편이 경남 의령의 산골에까지 딸아이를 데리고 내려가 두 달 남짓 살았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나는 식당일로 돈을 벌어 딸아이네 생활비를 댔고 남편과 사위는 간호에만 매달렸다.
하지만 불행은 또다시 우리 가족을 덮쳤다. 그 무렵 B형 간염이 간경화까지 진전돼 있던 남편은 딸의 병에 극도로 신경을 곤두세운 나머지 갑자기 몸져 눕고 말았다.
온갖 병세가 하루아침에 급작스레 나타났다. 9월 담낭암 말기 진단을 받은 뒤 이것이 뇌와 폐, 간으로 급속히 전이됐고, 암으로 앙상하게 말라버린 팔·다리에다 황달과 당뇨증상까지 나타나면서 남편의 모습은 정말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렸다.
이제는 말을 하는 것도 힘들어한다. 퀭하게 치켜 뜬 눈으로 천정만 바라보다 고작 한다는 말이 "물"이라고 고함을 치거나 "아파"라고 끙끙 소리를 내는 것뿐이다.
남편이 앓아누우면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가슴만 졸이고 있다. 마음은 의령에 있는 딸에게로 늘 달려가고 싶지만 내가 없으면 꼼짝할 수 없는 남편을 버려둘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딸은 열흘에 한 번 꼴로 치료를 받으러 서울까지 다녀와야 하지만 아이들을 맡아줄 사람조차 없는 상황이다. 남편이 쓰러지기 전에는 내가 식당문을 닫고 아이들을 챙겼지만, 지난주에는 옆집에 맡겨놓고 치료를 다녀왔다고 했다.
나는 남편을 간호하느라 일손을 놓고, 사위는 딸을 간호하는데만 매달리고 있어 벌이가 없다 보니 생활도 엉망진창이 됐다.
당장 병원비를 마련할 길도 막막한데다 생활비도 감당하기가 힘들다. 대학교를 다니던 아들 둘이 엄마를 돕겠다며 식당을 지키고 있지만 이미 손님은 끊어진지 오래다.
며칠 전, 둘째 외손자가 돌을 맞았다. 우환이 겹치다 보니 돌잔치는커녕 제대로 상을 차려 먹이지도 못했다. 제발 내년 생일에는 온 식구가 오순도순 둘러앉아 케이크의 촛불을 꺼볼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에 눈물만 흐른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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