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남미 문학'은 낯설다. 몇몇 소설 작품이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다른 나라, 다른 대륙의 작품에 비하면 적다. 시 분야라면 더욱 그렇다. 남미 문학의 번역본 사정이 그렇다는 말이다. 하물며 남미 문학을 하는 국내 문인은 찾아보기조차 힘들다. 그런 점에서 구광렬의 시는 특별하다. 그는 청년 시절 멕시코 국립대학에서 공부했고, 중남미 시인으로 등단했다. 국내에서는 오월 문학상과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구광렬을 일단 '남미 시인'이라고 부르자. 남미 시인이라고 어떤 정해진 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구광렬 역시 자신의 시를 '어떤 무엇'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그의 시는 국내 여러 작가들의 시 혹은 영어권 작가들의 시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글쎄, 뭐라고 할까. 국제적이라고 해도 좋고, 스케일이 크다고 해도 좋고, 시공간을 뛰어넘는다고 해도 좋다. '시간과 공간을 넘는다'고 표현했지만 국내 작가들의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유년의 추억' 혹은 '신화적 무엇과 관계성'과는 다르다.
'열대 아프리카의 나무가/ 온대의 내 가난한 정원에 뿌릴 내릴까 싶다가/ 신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진 나무/ 수명이 오천 년이나 된다는 나무를 심는 일은/ 명주실 한 타래를 위해/ 끊어진 누에고치에 새삼 숨을 불어넣는 일과/ 깨져버린 꿈을 잇기 위해 삼가 눈을 감는 일/ 문드러져 사라져버린 지문을 다시 새기고/ 흐릿해진 손금에 새로이 먹을 먹이는 일/ 무엇보다 뵌 적 없는 조상에게/ 엄숙히 제(祭)를 드리는 일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잠자는 이마에 듣는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져/ 오늘 그 바오밥나무 씨앗을 묻기에 이른다/ (중략) 지난 날, 강 저쪽에 망각해/ 도강의 꿈을 저버렸던 새 한 마리/ 뿌리보다 더 뿌리 같은 가지 위에 앉아/ 그 평화스러운 나눔을 지긋이 바라볼 때/ 그 즈음/ 이 정원에 눈이 내려도 좋을 것이다/ 씨앗을 쥐고 있던 내 손바닥, 화석이 되어도 좋을 것이다.' -바오밥- 중에서.
이 시에서는 꿈을 찾으려는 화자의 열망이 보인다. 시인은 '열대 아프리카의 바오밥 나무가 온대의 내 정원에서 자랄 수 있었으나 자라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씨앗을 고이 간직했다가 뿌리면 내 정원에서 자랄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대가로 내 온대의 정원이 차가운 눈의 땅으로 변해도 좋고, 따뜻한 피가 흐르는 내 손이 화석이 되어도 좋다고 말한다. 소통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아프리카와 먼 땅과 내가 선 땅 (혹은 내가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조상과)의 끊어진 유대를 이을 수 있다면 말이다.
시인은 우리가 이별하고, 서로 잊었던 것은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도강의 꿈을 저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 다시 날아오른 새가 저 강 건너 바오밥 나무 가지에 앉아 평화로운 눈으로 나눔을 바라볼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인류에게 꿈이 없는 것은 그 꿈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꿈을 이루려는 의지를 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구광렬은 현실적 고통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않지만, 현실을 노래하고, 신화에 함몰되는 법 없이 '신화가 살아 있던 날들'에 대해 노래한다.
시집 제목이기도 한 '불맛'은 어떤가. 불에 무슨 맛이 있다는 말인가. 여기서도 시인은 생명을 이야기한다. 음식의 생명은 맛일 것이다. 그러나 구광렬이 지칭하는 음식은 소금간을 치는 대신 불로 간을 맞춘다. '불간이 잘 배어야 음식은 맛있는 법'이라는 것이다. 불간이 잘 밸 때 생명의 씨앗은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구광렬의 시들은 이채롭고 흥미롭다. 141쪽, 8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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