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시청하던 중 '달'이와 '별'이를 만났다. 달이와 별이는 개다. 달이는 수놈이고 별이는 암놈이다. 주인의 말을 빌리자면 두 마리는 없어서는 안 될 절친한 사이다. 문제는 달이가 다른 곳으로 가게 된 후에 생겼다.
달이와 헤어진 뒤부터 별이는 담벼락에 올라갔다. 그 위에 올라서서 먼 데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느껴져서일까. 카메라에 클로즈업된 별이의 눈에 그리움이 그렁그렁 고여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은 자식을 기다리는 엄마의 모습 같기도, 애인을 기다리는 여인의 애타는 눈빛 같기도 했다.
동물의 언어를 모르는 나로서는 동물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감히 꿈꾸지 못한다. 다만 별이가 담벼락에 올라서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모습에서 기다림은 동물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동물의 세계를 보다 보면 새끼에 대한 본능적 애정을 간직한 어미의 헌신이 돋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리움이나 사랑의 감정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그렇다고 가정하면 별이는 달이를 기다리고 있는 게 맞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 주인은 별이의 짝이 될 만한 개를 수소문했다. 잘생긴 진돗개 한 마리가 별이의 짝으로 왔다. 진돗개를 발견한 별이는 오매불망 기다리던 달이라도 온 듯 한달음에 달려갔다. 달려가 코를 벌름대며 냄새를 맡고, 목덜미를 비비고 주둥이로 진돗개의 입가를 핥았다.
그 순간 나는 '역시 개일 뿐이었어' 그 생각과 함께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란 광고 카피를 떠올렸다. 더 많은 걸 기대한 마음이 허탈해지는 순간, 상황이 역전됐다. 별이는 진돗개의 구애를 매몰차게 뿌리쳤다.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했다. 개는 후각이 발달되어 처음에 각인된 냄새를 평생 기억한다고 한다.
'달인 줄 알았는데 달이가 아니었어.' 실망감에 담벼락에 올라선 별이, 먼 산 바라기에 빠져 있다. 그 모습이 처연해서 내 마음마저 축축해져 버렸다. 주인은 팔아버린 달이를 수소문했다. 어렵게 찾았지만 달이는 사고로 죽고 없었다. 대신 달이의 목줄만 돌아왔다. 별이는 목줄 주변을 빙빙 돌며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냄새를 맡다가 그 앞에 웅크려 두 눈을 끔벅였다. 별이의 눈이 텅 비어 있다.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눈, 주인은 달이가 남긴 목줄을 별이의 목에 채워 주었다.
임수진 수필가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李대통령, 남아공 대통령·호주 총리와 정상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