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 환희, 절망과 회한이 점철된 시간이 지났다. 좌절 뒤에 새로운 기쁨을 맛본 이도 있을 것이고 갈등 끝에 어떤 결단을 해야 한 이도 있을 것이다. 이제쯤 대부분의 대입 수험생들은 어떤 형태이든 격정 끝의 고요와 평온의 시간 속에 있을 것이다. 거의 십 몇 년간을 오직 한 길 대입을 목표로 달려와 끝지점에 도착했으니 그 결과야 어찌 되었든 홀가분한 생각에 온몸에 전율되는 자유의 냄새에 도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길고 험한 세상이라는 강물의 끝자락이 아니라 그 시작점이라는 것을 아는 수험생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제껏 타율과 규제의 삶에서 놓여나온 세상은 교과서가 가르쳐 준 대로의 세상이 아니며, 푸른 자유의 세상은 더구나 아닐 것이다. 홀로 판단하고 행위하고 그 판단과 행위에 무한한 나의 책임을 요구하는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오늘의 삶은 내일을 위해 준비하는 삶이어야 한다. 여태까지는 학교와 선생님과 부모님이 선도하고 준비해 준 삶에 안존해 있었다면 이제는 나의 미래는 내가 준비하는 홀로서기 연습을 하여야 한다. 그 적절한 연습의 시기가 바로 이때이다. 이룰 것 이루었으니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고 살리라는 위험한 발상은 방종과 일탈을 유혹하는 천박한 상업주의의 유혹에 자칫 나를 버리기 십상이다. 절제 없고 의미 없는 무계획적 일상은 비록 며칠 아니더라도 참으로 사람을 무기력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을 20여일 앞두고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는 이는 일단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되어 있다.
그런 이들에게 '여행'을 권하고 싶다. 지극히 가벼운 차림으로 그저 주머니에 두 손 넣고 무심히 집 밖을 나서는 그런 차림으로 여행을 나서볼 일이다. 친척집 정도로 행선지를 정해서 나서도 좋고, 아침에 나서 저녁에 돌아올 정도라면 무작정 나서 보는 것도 뜻있다. 그렇고 그런 번다한 일상을 떠난다는 생각에서 가벼운 일상일탈의 여행은 생소한 공간에 나를 놓아보는 새로운 시도이며 거기서 발견되는 내가 어떤 모습이든 그것은 자신에 대한 유쾌한 확인의 경험이 될 것이다. 여행의 진정한 즐거움은 돌아와 안주할 곳이 마련되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벼운 여행을 감행하는 것은 일상의 소중함을 재확인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또는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대하여 스스로가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을 때이므로 눈높이를 낮추어 세상에 대해 눈뜨는 연습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비록 대학의 문이 과거보다 많이 넓어졌다고 해도 대학생은 아직은 선택받은 신분이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삶들이 있음을 확인해 보는 기간으로 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것은 더없는 보람이 될 것이다.
비록 올해 대입을 선택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위의 것들은 유효하다. 지금은 한두 해라는 시간이 크게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길고 먼 인생길에서 그것은 거의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로 작거나 또는 없다고 여겨질 단지 한두 발자국 정도의 차이에 불과한 것일 뿐이다. 초등학교 시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경주해 본 경험을 우리는 누구나 공유하고 있다. 결승선의 흰색 테이프를 가슴으로 느낄 사람이 누구인지는 달리면서는 아무도 모른다. 출발이 늦어도, 또는 중도에 넘어지더라도 오직 포기 않고 달리면 그 테이프를 끊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달리지 않았던가. 훨씬 더 성숙된 자신감으로 일 년을 계획하는 재충전의 시기로 현재를 사는 모습은 더없이 아름다울 것이다.
차상로 범성학원 평가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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