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자궁경부암 앓는 이영순씨

"떠돌이 신세지만…영감 생각하며 버텨요"

10년 만에 재발한 자궁경부암으로 투병 중인 이영순(가명·67·구미 비산동)씨는 방 한칸 없이 식당과 찜질방을 전전하며 살아왔다. 날품팔이를 해 번 돈으로 치매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남편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도 혹여 힘들게 살아가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10년 만에 재발한 자궁경부암으로 투병 중인 이영순(가명·67·구미 비산동)씨는 방 한칸 없이 식당과 찜질방을 전전하며 살아왔다. 날품팔이를 해 번 돈으로 치매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남편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도 혹여 힘들게 살아가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어머니는 앉으나 서나 자식 걱정뿐이었다.

"이 기사가 나간다고 자식에게 해가 되지는 않겠지요?" 수십번도 더 되뇌어 물었다. 그렇게 걱정되는 일을 왜 하려고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머니는 또다시 "자식 때문에…"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자신의 치료비가 자식에게 부담으로 돌아가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러잖아도 먹고살기 힘든 자식들 형편에 제 병원비가 또 짐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돼서요."

◆60대 떠돌이 삶, 병마까지 겹쳐

이영순(가명·67·구미 비산동)씨는 자궁경부암을 앓고 있다. 2000년 한차례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고 겨우 완쾌됐지만 올 1월 10여년 만에 또다시 재발한 것이다. 현재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번갈아가며 받고 있는 중이다.

병이 재발하기 전 이씨는 여관과 찜질방 등을 전전하며 혼자 생활했다. 75세인 남편은 치매 증세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다. 40대부터 뇌를 다쳐 일을 할 수 없었던 남편은 몇년 전부터 치매 증세가 심해져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이씨는 "남편과 함께 생활하던 단칸방은 방세를 내지 못해 그냥 비워줘야 했다"며 "이웃에 사정해 다락방에 세간을 맡겨둔 채 옷가지만 한 가방 들고 집을 나와 여기저기를 전전했다"고 했다.

적지 않은 이씨의 나이. 일을 하려고 해도 그를 써 주는 곳이 없었다. 이씨는 "식당 일자리라도 구하면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그렇지 않으면 목욕탕이나 찜질방에서 몸을 뉘었다"며 "이 나이에 이렇게까지 구차한 삶을 이어나가야 하나 설움이 밀려올 때도 있었지만 요양병원에서 돌봐줄 이 없는 남편을 생각해 근근이 버텨왔다"고 했다.

이씨가 벌이를 하지 못하면서 남편의 병원비도 많이 밀렸다. 이씨는 "나와 남편의 병원비가 자식들에게 또 짐이 될 것 같아 숨쉬고 있어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며 눈물을 훔쳤다.

직장생활을 했던 이씨는 2000년 암 선고를 받고 퇴직했다. 당시 받은 퇴직금은 그의 치료비와 자식들의 사업자금으로 죄다 써버렸다. 이씨는 "그때 조금 독한 어미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퇴직금을 내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제는 빈털터리인 부모가 짐이 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마음 아픈 내 자식, 잘만 살아준다면

병으로 인해 몸이 쇠잔해진 이씨는 마음마저도 더 이상 내몰릴 데 없는 낭떠러지에 서 있었다. 항암치료를 이겨내느라 온몸은 앙상하게 말랐고, 잠시 퇴원을 해도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갈 곳을 걱정하다 보니 외로움은 더 깊어지고 있었다.

이씨는 슬하에 아들 둘을 뒀다. 하지만 큰아들은 IMF 무렵 사업이 부도 나면서 아직도 재기하지 못하고 있고, 둘째아들은 자폐아와 쌍둥이 등 아이 셋을 키우며 빚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형편이다.

"어려운 형편에 장애가 있는 아이까지 키우다 보니 저희들도 얼마나 인생살이가 힘이 들겠어요. 없는 집에 시집와 그만큼 노력하고 살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무엇을 더 해달라고 말할 형편이 아닙니다. 해 준 것 없는 부모가 죄인이고, 젊은 며느리가 어찌 생각할지 몰라 마음만 졸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해준 내가 바보지요."

이씨의 소원은 단 하나였다. 자식 둘이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결혼생활 유지하고 자식들 키우며 잘 살아주는 것. 그렇게만 된다면 자신의 병은 어찌 됐든 상관없고, 혼자 또다시 여기저기를 전전하며 살아도 더없이 행복하겠다고 했다.

"이 나이에 무슨 소원이 더 있겠습니까. 자식들에게 영감까지 떠맡길 수가 없어 영감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는 내가 뒤치다꺼리를 해야겠다는 일념뿐이지요. 제발 이 암이 심해지지 않아 그때까지만 제 밥벌이하고 살 수 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말을 잇는 이씨의 얼굴에 자식을 향한 애잔함이 잔뜩 묻어났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매일신문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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