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도예 인생, 월파 이정환(57)이 경북 문경에 가마터를 잡은 것은 1983년부터다. 2010년 현재 30여개 가마(窯)가 있다. 전국 곳곳에 가마가 있고, 경기도 이천과 광주에 500여개 가마가 있지만, 이들 가마 대부분은 가스불을 땐다. 그러나 문경의 가마는 모두 장작을 땐다. 조선 가마의 전통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온 곳도, 근현대 도자기의 부흥을 이끈 곳도 경북 문경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그릇은 사기 제품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양은과 스테인리스 제품이 들어왔고, 사기 그릇은 밀려났다. 수요가 떨어지자 전국의 가마터들도 하나둘 문을 닫았다. 하지만 문경지역은 오지여서 양은이나 스테인리스 제품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게다가 전국적으로 산이 헐벗었던 시절에도 문경에는 땔 나무가 있었고 좋은 흙이 풍부했다. 그 덕분에 문경의 가마는 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1960년대 중반 한·일 국교가 정상화됐고, 일본인들이 '조선 사발'을 구입하기 위해 문경에 쇄도하면서 문경은 다시 번성하는 기회를 가졌다. 1980대년, 90년대를 지나면서 일본의 국내 경기가 나빠졌고, 고가의 사발 수요도 많이 줄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차 마시기 열풍이 일면서 국내 수요가 늘어났다.
월파 이정환은 일본의 사발과 한국의 사발을 꾸밈의 미와 자연의 미로 구별했다. 일본에는 도예가가 한국보다 많다. 그러나 그들의 도자기는 기생이 화장을 한 듯, 광대가 분장을 한 듯 꾸며진 아름다움이 강조된다. 중국의 도자기는 영웅적이고 기개가 넘치는 것들이 많다. 이에 반해 한국의 도자기는 꾸밈이 없고 자연스럽다.
"사람들이 차를 마시면서 수행하는 것은 비움에 이르기 위함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연미가 배어 있는 우리나라 사발이 가장 적합한 것으로 평가받지요. 천지의 무심함과 자연의 기운이 배어 있는 사발이라고 할까요."
도자기의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도예가들마다 너무나 자의적으로 가격을 매기기 때문에 전문가들도 '좋은 작품'을 구별할 수 있지만 가격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도예가들 중에는 사발 하나에 일천만원 이상을 아무렇지 않게 부르는 사람도 있다. 때때로 터무니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사발의 값, 작품의 가치는 어떻게 구분됩니까?'
이정환씨는 일반적인 가격선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소장하는 사람이 부여하는 가치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사발에서 산을 보는 사람은 산의 가치를, 물을 보는 사람은 물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겠지요. 아무리 비싸게 주고 산 사발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다면 무의미할 것입니다. 천지자연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천지자연을 가진 셈이니, 그 귀함이야 말할 것도 없지요."
사발 하나에 일천만원, 이천만원이라는 호가에 혀를 내두르거나 돌아서서 욕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꺼운 마음으로 그것을 구입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그의 말대로 도자기의 값은 소장하는 사람의 '안목과 가치'에 달린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정환은 사발은 꼭 그 사람이라고 했다. 만드는 사람도 크기만큼 만들 수 있고, 소장하는 사람도 그 사람의 크기만큼 소장할 수 있다고 했다. 돈이 많은 사람이 비싼 작품을 소장할 수는 있겠지만, 반드시 '좋은 작품, 귀한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월파 이정환은 세상에 얼굴을 별로 내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사발은 천년이 가도 살아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도자기 그릇의 속성에 관해 말하는 줄 알았는데, 그는 그릇을 만드는 사람의 태도에 관해 말하는 중이었다. 천년이 지나도 자신의 사발이 잊히지 않을 것인데, 오늘 내일 누가 알아봐 주는 것이 뭐에 그리 중요하다는 말인가, 하는 말이었다.
사기 그릇을 좀 안다는 사람들은 흔히 이라보, 고비키, 하케메, 이도, 도도야라는 말을 쓴다. 이는 조선 사발의 일본식 분류명이다. 임진왜란 때부터 일본은 우리나라 도자기를 약탈해갔고, 사기장(도공)을 납치해갔는데, 이제는 이름마저 그렇게 불린다. 사기장은 도공으로, 사기 그릇은 자기로, 사금파리는 도편, 가마는 요, 흙가래는 코일로 불리는 것도 모두 일본의 영향이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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