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지역 실버 구직활동 '하얀 아우성'

베이비붐 세대 은퇴 시작, 경쟁 더 치열해져

4일 대구 달서구 도원동 한국토지주택공사 대구경북본부.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본부 측이 2일부터 5일까지 '실버사원' 모집 공고를 내놓으니 지원자가 폭주했다. 대구·경북 61개 영구임대아파트 운영 보조를 위한 60세 이상 실버사원 205명 채용에 이틀만에 1천600여명이 원서를 냈다.

총무팀 백종하 계장은 "실버사원 채용은 이번이 처음인데 지원자가 너무 몰려 깜짝 놀랐다"며 "일자리가 필요한 어르신들이 이렇게 많을 줄 미처 몰랐다"고 했다.

◆높은 경쟁률에 깜짝 놀라=현장에서 만난 박모(64·대구시 서구)씨는 "하루 4시간씩 주 5일 근무에 월 50만원씩 받고 6개월 일하는 채용 조건이 너무 괜찮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보통 지원하는 일자리는 한달 20만원 벌기도 빠듯한데 좋은 일자리가 나타났으니 얼마나 경쟁이 치열하겠느냐"고 했다. 박씨는 병원 청소일을 하다 몸이 아파 그만뒀고 2년여를 쉬는 바람에 1년이 다 되도록 새 일감을 찾지 못한 상태다.

고령화 추세에 베이비붐 세대 은퇴까지 겹치면서 구직 실버가 폭증하고 있으나 노인 일자리는 한시적, 저임금 구조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물에 콩 나듯 하는 공기업 실버 채용 현장마다 경쟁률이 급상승하면서 공공부문의 실속 있는 일자리 개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줄기차게 나오고 있다.

대구고용지원센터에 등록한 60세 이상 노인 구직자는 2006년 7천307명에서 2009년 1만8천458명으로 3년 만에 배 넘게 폭증했다. 2010~2018년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 인구가 712만명에 달해 노인 구직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와 민간 노인 일자리 공급은 극히 저조해 국내 60세 이상 인구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04년 이후 줄곧 4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10명 중 6명 이상이 '노인 백수' 신세다. 특히 근로 시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현재 정부가 노인에게 제공하는 일자리의 임금 수준은 월 20만원 이하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소득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45.1%인 것을 감안하면 너무 낮다.

대구고용지원센터 조현철 취업2팀장은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지만 꾸준히 일할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사업 규모가 큰 공·사기업들이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갖고 노인 일자리 창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버 일자리 급하다=일찌감치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은 노인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년을 65세로 의무화하고 60세 이상 인력을 채용할 경우 고용촉진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2007년 일본 고령사회백서에 따르면 65~69세 인구 취업률은 49.5%에 달한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이제야 대처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달 중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가 '베이비붐 세대 고용대책위원회'를 발족해 임금과 근로시간 조정을 통한 정년 연장 추진, 전직(轉職) 서비스 확충, 고령자 취업 촉진 일자리를 발굴하기로 했다.

노동부 장애인고령자고용과 윤영귀 과장은 "'베이비붐 세대' 은퇴가 가속화됨에 따라 고령자 일자리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세대와 계층 간 소득 불균형 현상이 심각해질 우려가 커 일자리 확충 방안 마련을 고심 중"이라고 밝혔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