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송재학)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었는데

치자향이 수로(水路)를 따라왔네

그는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무덤가 술패랭이 분홍색처럼

저녁의 입구를 휘파람으로 막아주네

결코 눈뜨지 못하리

지금 한 쪽마저 봉인되어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이 숲은

나비떼 가득 찬 옛날이 틀림없으니

나비 날개무늬의 숨결 따라간다네

햇빛이 세운 기둥의 숫자만큼 미리 등불이 걸리네

눈뜨면 여느 나비와 다름없이

그는 소리 내지 않고도 운다네

그가 내 얼굴 만질 때

나는 새순과 닮아서 그에게 발돋움하네

때로 뾰루지처럼 때로 갯버들처럼

"나는 새순과 닮아서 그에게 발돋움하네/ 때로 뾰루지처럼 때로 갯버들처럼"이란 결구의 아름다움만으로도, 가히 언어로 이룬 섬세한 미학의 한 극점이라 하겠습니다. 시를 소리 내어 읽는 사이, "수로(水路)를 따라"온 "치자향"이 제 방에 가득합니다.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고 싶은 오후입니다.

이 시를 굳이 해석하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그 섬세한 이미지들이 충돌하고 변주되면서 거느리는 아우라에 서럽도록 충만하게 휩싸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나비 날개 무늬의 숨결 따라가"듯 그냥 따라가면 어떨까요. 그러면 "햇빛이 세운 기둥의 숫자만큼 미리 등불이 걸리"는 저녁이 어느새 다가와 있지 않을는지요.

나도 이, 미리 온 봄의 새순과 닮아서

당신을 향해 발돋움합니다.

때로 뾰루지처럼 때로 갯버들처럼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며 대구의 '첫 여성 단체장'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대구의 경제적 문제를 해...
이달 원/달러 환율이 1,470원을 넘어서며 199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중동 전쟁의 여파로 원화가치가 급락하고 있어 1,500...
경기 남양주에서 20대 여성을 살해한 40대 남성 A씨가 의식 불명 상태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이 지연되고 있으며, A씨는 범행 후 전자발찌...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폭격으로 중동 전쟁이 발발한 가운데,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살해하겠다고 공언했으..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