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덕포동 이양(13) 살해 용의자로 검거된 김길태(33)에 대한 관심이 또 다시 집중되고 있다. 지난 15일간의 도피 행적과 그의 기구했던 성장과정을 다시한번 되짚어본다.
◆15일간의 도피행적=김길태는 이양을 살해한 후 경찰의 추적을 피해 15일 동안 부산 사상구 덕포동 일대의 폐공가를 옮겨다니며 도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로 낮에는 빈집에 숨어있다가 인적이 뜸한 새벽시간대를 골라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특히 지난 3일 수색활동 중인 경찰과 마주쳐 달아나면서 남긴 휴대전화의 알람이 오전 5시에 맞춰진 점을 감안할 때 경찰은 김길태가 주로 오전 5시 전후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 새벽에 활동을 시작한 김길태는 인근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음식물, 담배 등을 훔친 후 빈 집으로 다시 돌아와 보름 동안 라면 등으로 연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시기에 덕포동 일대에서 음식물이 자꾸 사라진다는 주민 신고도 김길태의 소행으로 짐작되고 있다. 김길태는 경찰의 포위망이 점점 좁혀지자 불안감을 덜기 위해 던힐 담배를 자주 피우고 소주를 마시기도 했다.
◆길에서 태어나 '길태'=김길태는 친부모와 헤어진 후 부산 사상구의 한 교회에서 자라다 2살 때인 지난 1978년 지금의 양부모에게 입양됐다. 당시 딸만 2명이 있었던 김씨 부부는 친척의 소개로 김길태를 알게 돼 그를 아들로 거둬들인 것이다. 김길태의 이름인 '길태'도 '길에서 태어났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머니 윤씨는 "시어머니가 '젊어서 사내 아이 한 명 더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권유해 입양을 마음먹었다"며 "친척에게 아이 한 명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다음날 그를 통해 교회에 맡겨진 길태 얘기를 듣고 아들로 키우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유년시절 김길태는 양부모에게 온순한 아이로 기억되고 있다. 말수가 적은 데다 친구를 괴롭히는 일도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 성적이 그렇게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김길태는 학업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그의 성적이 눈에 띄게 떨어지자 다시 열심히 공부하라고 독려하던 어머니에게 "모두 1등만 하면 누가 꼴찌를 하겠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때부터 그는 어머니에게 부쩍 자신의 출생에 관한 질문을 자주 하기 시작했다. 윤씨는 "길태가 가끔씩 '엄마, 나는 어디에서 왔어?'라고 묻곤 했다"며 "그럴 때마다 '하늘에서 떨어진 너를 내가 받았다'고 대답하며 얼버무렸다"고 말했다. 김길태의 양부모는 김길태가 자신이 입양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씨 부부는 김길태가 자신이 고아라고 경찰에 말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범죄의 길로=김길태는 청소년시절부터 각종 절도를 일삼아 소년원 출입이 잦았다. 중학교를 마친 후 부산의 한 상업계 고등학교에 입학하지만 1년 후 학교를 중퇴하고 만다. 아버지 김씨는 "길태가 주변의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범행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며 "당시 먹고살기 바빠 아들을 바른 길로 이끌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후회했다.
김길태는 19살이던 지난 1996년 9월 폭력혐의로 기소돼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며 지난 1997년에는 9살 여아를 주택 옥상에서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쳐 3년 동안 교도소에서 지냈다. 3년 후 사회로 복귀해서도 그의 범죄행각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01년에는 출소한 지 1개월 만에 30대 여성을 납치한 뒤 성폭행하고 감금한 혐의로 다시 8년 동안 철창신세를 져야만 했다.
◆돌이킬 수 없는 길로=교도소 출소를 6개월 앞둔 지난 2008년 12월, 김길태는 부모님께 보낸 편지에서 '새 사람'으로 살겠다는 각오를 내비치기도 했다. 특히 과거 자신의 비행으로 부모님의 속을 썩인 점을 반성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실제 그는 교도소에서 나와 한 달 가까이 수원에서 일하면서 번 돈의 일부를 집으로 부치는 등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교도소에서 지낸데다 아는 친구도 많지 않았던 김길태에게 사회 적응이 쉽지 않았다. 일을 그만 둔 김길태는 사상구 일대의 빈집을 전전하며 지내던 중 다시 내면에 잠재해 있던 범죄의 유혹에 빠지고 만다. 출소한 지 7개월 후인 지난 1월 23일 귀가하던 30대 여성을 성폭행하고 감금한 혐의로 경찰의 추적을 받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지난달 사상구 덕포동 이양 집에 침입해 이양을 납치, 성폭행한 후 살해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서고 만다.
부산일보 황석하기자 hsh03@busanilbo.com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