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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원태의 시와 함께] 야채사(野菜史)/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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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가지 같은 야채들도 애초에는

꽃이었다 한다

잎이나 줄기가 유독 인간 입에 달디단 바람에

꽃에서 야채가 되었다 한다

달지 않았으면 오늘날 호박이며 양파들도

장미꽃처럼 꽃가게를 채우고 세레나데가 되고

검은 영정 앞 국화꽃 대신 감자 수북했겠다

사막도 애초에는 오아시스였다고 한다

아니 오아시스가 원래 사막이었다던가

그게 아니라 낙타가 원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람이 원래 낙타였는데 팔다리가 워낙 맛있다보니

사람이 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여하튼 당신도 애초에는 나였다

내가 원래 당신에게서 갈라져나왔든가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고구마, 가지 같은 야채들도 애초에는/ 꽃이었다"는 생물학 얘기로 시작되는 이 역설은, 사물의 전도(顚倒)된 관계를 우화(寓話)풍으로 그려내고 있다. 입심 좋은 시인은 단지 "달지 않았으면"이란 가정 하나로, 호박이나 양파 같은 야채들이 "장미꽃처럼 꽃가게를 채우고 세레나데가 되고/ 영정 앞 국화꽃 대신 감자 수북했겠다"라는, 발랄한 아이러니를 펼쳐낸다. 이러한 '뒤집음'은 사막과 오아시스, 낙타와 사람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어불성설'의 경지에 이르며 확장된다.

시인은 사물의 전도된 관계를 통해 오히려 모든 존재의 불교식 '불이'(不二)의 연관관계를 역설하고 있다. 요컨대, 당신도 애초에는 나였다. 혹은 내가 당신이었든가. '나는 너다'라고 역설했던 황지우 시인이 떠오른다. 거기 혼자 있는 그대여, 너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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