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원고지 3~5매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패션 아울렛 올브랜 10만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박진아(대구 수성구 황금동)
다음 주 글감은 '선생님'입니다.
♥ 버거운 일 생기면 늘 생각나는 아버지
아직 철이 덜 들었나 봅니다. 살면서 버거운 일이 생기면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아버지 앞에 내 고단한 보따리를 풀어 놓으면 아버지는 해답을 주시거나 위로해 주실 것 같은 믿음이 있습니다. 소소한 일들이나 즐거운 얘깃거리는 어머니께 가져가면서 어렵고 힘든 일은 아버지께 털어 놓는 것은 어머니는 나날이 연로해지시는 모습이 보이지만 아버지는 제 기억 속에 늘 건장하신 까닭입니다.
작년 동짓달에는 아버지 옆자리에 나란히 묻히길 원하는 어머니 소원에 따라 어머니의 가묘를 만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새 집을 장만하신 양 뿌듯해 하시며 산소 주위에 꽃나무를 심고 잡풀도 뽑고 잔디를 가꾸면서 아버지와의 재회를 준비하십니다.
우리 아이들은 가묘를 만들어 놓은 것을 이해하지 못해 가묘를 보면 기분 나쁘다고 투덜거립니다. 저도 내심 미리 준비한 엄마집이 섭섭합니다. 언젠가 어머니마저 떠나시면 하는 생각에 서글퍼집니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갑작스럽던 아버지와의 이별이 어제 일처럼 떠올라 눈물이 납니다. 삼십년이란 세월 속에 묻힌 아버지의 부재에 서러웠던 날들이 낱낱이 생각나 슬픔이 밀려옵니다. 삼촌 손을 잡고 예식장을 걸어 들어가던 설움도 다 잊은 줄 알았습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다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서럽고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아버지! 연로하시지만 아직 별 탈 없으신 어머니가 저희들은 고맙습니다. 어머니를 저희들 곁에 좀 오래 모셔 두고 싶습니다. 미리 준비한 집이지만, 더 많이 기다려 주세요. 저희 삼남매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쌓아 아버지께 전해드릴 얘깃거리를 더 많이 만들어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아버지.
정종숙 (대구 달서구 이곡동)
♥사랑의 편지로 카네이션 대신
공자의 인생 삼락 중에서 첫 번째가 부모님 살아계심이라 했습니다. 알게 모르게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뜻이리라.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고, 우주보다도 넓은 부모님의 은혜. 카네이션도 달아 드리고, 맛난 음식도 사드리고 싶은 맘도 있지만, 이번 어버이날은 사랑의 편지로 대신할까 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은 하늘이 맺어준 것이라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으니 얼마나 섭섭하셨을까.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에 자랑스럽게 달린 수고와 슬픔. 시부모님을 생각하면 자꾸 고개가 숙여지고 목이 메입니다. 말씀을 많이 하시지는 않지만 언제나 올바르게 살도록 안내해 주시는 잔잔한 아버님의 사랑. 정안수를 떠 놓고 자식들이 잘 되길 빌고 언젠가는 꼭 부자가 될 것이라고 용기를 주시는 고마우신 어머님. 집안 꾸미는 일, 화초 가꾸는 일, 음식 솜씨, 바느질 솜씨는 전 흉내도 못낸답니다. 손이 많이 가는 김치, 된장, 고추장은 아직도 맛있게 해서 보내 주십니다.
말수가 너무 적은 집안이라 온 가족이 모여도 썰렁하고 어색했지만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나도 될 수 있는 대로 말을 적게 하려고 하고, 야무지게 살림 잘 하고, 아이들 잘 키우고, 부모님도 잘 공경하는 인생의 모범생이 되려고 노력은 하는데 쉽지는 않습니다.
막내 아들이 하던 사업을 접고 ,식당 한다고 해서 걱정 많으셨죠? 잘 사는 모습만 보여 드리고 싶은데 죄송합니다. 다들 어렵다고 하니까 잘 참고 견뎌 내면 반드시 웃을 날이 올 겁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오래오래 사셔서 저희가 일어나는 것도 보시고, 우리 아이들 결혼하는 것도 보셔야죠?
오랫동안 제 삶의 모델이 되어 주세요. 어머님 아버님, 두분이 계셔서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막내 며느리 올림.
최순단(대구 수성구 만촌2동)
♥살가피보다 더 진한 것이 있음을 깨달아
차가운 바람이 당신의 약한 몸을 구석구석 에이게 찾아들기 전에 소중히 모셔 놓은 붉은 내의를 드리고 싶었는데 살가운 말 한마디 못한 채 살아왔던 못난 아들놈의 손은 그저 장롱 문을 닫았다 열었다 하는 데만 허송세월했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겸상도 용납하지 못한다는 고지식한 할아버지를 시아버지로 둔 죄로 당신은 평생 힘겹게 사셔야 했습니다. 딸만 둘 낳았다는 이유로 하루도 다리 뻗고 편히 주무시지 못했다는 당신에게는 오래전 그 날의 하루하루가 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나날의 연속이셨겠지요. 그래도 사내 녀석인 제가 태어나서 당신의 그 아픔이 가신 것 같아 조금은 우쭐해 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가난한 형편에 고기 반찬이라도 가끔 할라치면 두 누나들은 먹지 못하게 내 앞으로만 종지를 놓아주시고 누나들의 다 떨어진 구두는 외면하신 채 내게만 새 운동화를 사주실 때도 그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까까머리 고등학생이던 어느 날, 몹시도 위독하셨던 할아버지의 청천벽력 같았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말입니다."에미는 달라도 니는 누가 뭐래도 이 집 장손인기다. 훌륭한 사람 돼서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하고…. 느그 어무이 한테 잘 하거라."
그 잘난 장손이 아니어도 괜찮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당신의 친 아들이 아니라는 것은 내게 인정할 수 없는, 아니 받아들여지지도 않는 사실이었습니다. 약한 몸으로 아이를 더 낳을 수 없었던 당신을 대신해 첩실이 낳은 아들. 그날부터 내게 어머니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눈물조차 흘릴 수가 없었던 커다란 배신감에 나는 많은 날을 방황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 사춘기 시절을 지나 당신의 고마움도 알게 됐지만 난 당신을 어머니라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지나온 세월의 무게는 막혀 버린 입을 열어 고귀한 당신의 이름을 부르기에 너무도 무거웠습니다.
제가 결혼 후 당신을 떠올리며 빨간 내복을 사던 그 날엔 정말로 험난한 세월의 강을 넘어 10살 꼬마의 모습으로 당신의 앞에 설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못난 아들은 용기가 나지 않아 당신을 부르는 것을 하루 이틀 미루어 갔고, 그새 또 새봄이 찾아왔습니다.
어머니! 피는 물보다 진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피보다 진한 것을 알 것만 같습니다. 세월의 깊이만큼이나 부대끼며 나누었던 당신의 사랑과 정은 피를 통한 모자의 사이를 뛰어 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평생 당신의 아들로 진심으로 나를 아껴주셨던 당신을 보며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누가 뭐라 해도 당신은 내 어머니이십니다. 지나간 시간 속에서 말하지 못하고 가슴 속으로 웅크려 담고만 있었던 당신에 대한 사랑을 이제야 소리 내 말해 보는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어머니! 사랑합니다.
전병태(대구 달서구 두류2동)
♥ 우물에 빠진 날 구해준 아저씨께
기억조차 어렴풋이 잘 떠오르지 않는 유아 시절, 우물물에 빠진 적이 있었다.
샘 담장이 없는 바닥 깊이 5m 정도, 수심 1m 정도의 시골 공동 우물샘에 동무와 둘이서 물을 마시고 싶어서였는지 호기심에서였는지 두레박에 물을 담아 끌어올리다가 순식간에 샘 안으로 곤두박질치게 되었다. 빠질까봐 무서워 멀찍이 서서 샘안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두레박 끈을 당기다 돌 틈에 두레박이 걸려 있는 것도 모르고 있는 힘을 다해 당겼으니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샘안에 들어와 나를 한손으로 안고 한손으로 돌을 짚으며 건져준 아저씨가 있다. 우리집 앞집 아저씨였다. 마을 동장 업무 수행과 모내기 준비에 바쁘셨던 그 분, 내 생명의 은인인 아저씨께 오십년이 지난 지금이나마 감사의 글을 올리고 싶다.
'아저씨 그때 나를 구해주셔서 고맙고 지금도 고향 마을을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 내 고향 예천의 산천들에도 봄이 와 있을 것이다.
권오심(대구 남구 대명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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