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주설·패사설' 두류공원 너구리 다 어디로 갔나…

한때 너구리들이 두류공원에서 왕성하게 번식하며 활동했던 시절의 사진.
한때 너구리들이 두류공원에서 왕성하게 번식하며 활동했던 시절의 사진.
지금은 덩그러니 비어 있는 두류공원 너구리들의 먹이공간.(산마루 휴게소 뒤편)
지금은 덩그러니 비어 있는 두류공원 너구리들의 먹이공간.(산마루 휴게소 뒤편)

'너구리 이젠 없어' VS '아직 살고 있어'.

대구 도심에서 인간과 공존하던 야생너구리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7년 전 두류공원에서 야생너구리가 처음 발견(본지 2003년 7월 5일자 보도)된 이후 2007년까지 수십마리까지 늘어났던 개체수(당시 40~50마리 정도 추정)가 지난해 가을부터 현격하게 줄어들어 올해 들어서는 흔적조차 발견하기 힘들어졌다.

이를 두고 온갖 추측과 진단이 난무하고 있다. 동종교배로 인한 면역성 악화설, 앞산공원으로의 서식지 이주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집단 폐사설, 관절 등에 좋다고 해 약용으로 포획했다는 설, 너구리간 권력다툼으로 인한 이주설, 우레탄 트랙 설치로 인해 위협을 느낀 너구리들의 집단 도주설 등. 하지만 어느 설(說)도 똑 부러지게 두류공원 너구리의 현격한 개체수 감소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야생너구리는 이제 대구 도심에서 만나기 힘든 상황이 됐다. 대구시가 일부 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체계적인 관리계획을 세우지 않아 '자연과 동물이 어울려 사는 친환경도시 대구'라는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내팽개친 꼴이 됐다.

너구리가 처음 발견된 지 6년 10개월 정도 지났다. 정확한 원인 진단과 함께 도심 속 너구리 보호를 위한 마지막 플랜을 가동해야 할 시점이다.

◆너구리 개체수 현격하게 줄어든 건 사실

두류공원 관리사무소는 현재 공원 내에 서식하고 있는 너구리의 자취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너구리 사료를 창고에 쌓아두고 있다. 너구리 동영상을 마지막으로 공식 촬영한 것은 지난해 12월 12일. 이때 너구리 두마리가 두류공원 내를 돌아다니는 것이 포착된 이후로는 너구리의 사체나 배설물조차 찾기 힘들어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리고, 사료 공급을 중단했다.

하지만 휴게소 뒤에 너구리가 집단으로 내려오는 먹이공간을 마련하는 등 두류공원 너구리 전성시대를 이끈 장본인인 산마루 휴게소 주인 채창규(41)씨는 지난달에도 휴게소 주차장 건너편 산에서 너구리를 봤다고 했다. 채씨는 "너구리 숫자가 현격하게 줄어든 건 맞다"며 "한창 너구리가 많은 때를 기준으로 따진다면 현재는 10~20%로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채씨가 너구리를 위해 먹이를 주던 공간은 현재 덩그러니 빈 상태로 남아있다. 너구리가 가장 좋아하는 통닭을 갖다 놓아도 너구리는 찾아오지 않고 있다. 그는 "밤새 이곳에서 너구리를 기다려봐야 너구리를 볼 확률은 10%도 안 될 것"이라고 낙담했다.

너구리의 자취를 찾기 힘들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진작에 두류공원을 너구리의 명소로 만들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계명대 생물학과 김종원 교수는 "일본 같은 경우는 도심 속 너구리를 자연의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너구리를 보호하기 위한 특별대책을 세우는 한편 너구리 캐릭터까지 만드는 등 도시 홍보에 적극 활용한다"며 "두류공원에 너구리 가족과 사람들이 어울려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겠는가"라고 했다. 김 교수는 "몇 마리라도 두류공원에 너구리가 살고 있다면 대구시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 두류공원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라져가는 너구리 왜?

'두류공원 야생 너구리들이 지난해 말 대책회의를 한 끝에 이곳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두류공원을 매일 산책하는 김형수(43·달서구 두류동)씨는 두류공원에서 너구리가 사라졌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지난해 대구시가 공원 등산로와 산책로를 우레탄 트랙으로 바꾼 점을 원인으로 꼽았다. 트랙에서 화학 성분 냄새가 나고 너무 인공적이라 너구리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이유다.

달서구에 있는 죽전동물병원 이동국(37) 원장은 지난 1년 동안 로드킬을 당하거나 영양실조, 심한 피부병과 개홍역에 걸려 병원에 온 너구리가 5마리 있는데 이들 모두 건강하게 살아갈 환경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속단할 수는 없지만 너구리들이 집단 전염병에 걸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폐사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조심스레 진단했다. 그는 "너구리가 두류공원에서 건강하게 잘 살고 있을 당시에 종합백신을 맞히고 인간과 함께 살아갈 서식환경을 잘 만들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두류공원 관리사무소 김대관 관리계장은 앞산공원이나 다른 곳으로의 이주설에 무게를 뒀다. 김 계장은 "배설물이나 사체 등 너구리의 흔적이 올해 들어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곳 너구리들이 서식지를 다른 곳으로 옮겼을 가능성이 크다"며 "옮겼다면 지하 하수관을 타고 앞산공원으로 갔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앞산공원 쪽에서 너구리를 본 목격자들이 몇명 있다고 한다.

김 계장은 기자가 지난달 산마루 휴게소 주인 채씨가 너구리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자 다시 한번 확인한 뒤, 만약 사실이라면 다시 너구리 사료를 곳곳에 뿌려주는 등 본격적인 보호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매일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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