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혼란/앤드류 니키포룩 지음/이희수 옮김/알마 펴냄
콜레라는 단 일곱 번의 유행으로 세계의 물을 거의 대부분 점령해버렸다. 1990년대 중국의 양계장에 숨어든 조류인플루엔자는 그 넓은 대륙을 단숨에 점령하고, 닭들을 살육했다.
2차 세계대전 직전 갈색뱀이 괌의 미군 기지에 나타났다. 천적이 없는 섬에서 갈색뱀은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 자생종 새들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누구도 이들의 침입 사실을 몰랐다. 1980년대 붉은공작비둘기, 미크로네시아넓적부리 등 아름다운 새들이 사라질 때 과학자들은 '알 수 없는 전염병으로 새들이 죽어간다'고 생각했다.
숲에 살고 있던 8종의 새를 깡그리 먹어치운 이 갈색뱀은 도마뱀, 뾰족뒤쥐, 장지뱀, 쥐, 닭, 심지어 사람의 아기까지 잡아먹기 시작했다. 괌에는 1㎢당 4천600마리의 갈색뱀이 서식한다. 갈색뱀이 새들을 먹어치우자 새에 의존해 종자를 퍼뜨리던 나무들도 설 자리를 잃어갔다.
지구 65억 인구의 상거래, 여행, 식습관 덕분에 수많은 생물학적 히치하이커들이 세계로 뻗어나갔다. 매년 10억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세계를 누비는 동안 미생물은 전 세계로 소리 없이 침투해 무차별적 살육을 단행했다. 하루는 조류인플루엔자가 세상을 뒤집어 놓았고, 하루는 항생제 내성세균이 사람을 공포에 떨게 했다. 잣나무털녹병, 크립토스포리디움, 라임병, 에이즈, 적조, 탄저병, 광우병 등 이름도 낯선 미생물들이 인류를 교통수단 삼아 세계 곳곳을 점령했다. 이들의 침략으로 지구에 분포하는 1천만종 생물 가운데 50%가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
침입에 성공한 생물종(미생물이든 동물이든)에게는 병리학적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순식간에 번식한다. 예컨대 매미나방은 무려 300여종의 식물을 먹을 수 있다. 항생제내성세균(MRSA)은 사람의 장기라면 무엇이든 먹어치운다. 조류인플루엔자는 세계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공장형 양계시설을 자기 바이러스의 무한대 복제도구로 삼는다.
침입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면 생태계 전체와 먹이사슬, 수계(水系)는 물론이고 인류제국의 운명까지 바꾼다.(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건설하고 무역로를 열었던 몽고는 히말라야에서 무역로를 따라 초원으로 넘어온 페스트로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 침입자들이 들어와 종을 한바탕 휘젓고 나면 최후의 승자가 판가름나고 수많은 패배자가 양산된다. 가장 최근에 승리를 거둔 생물종은 호모 사피엔스(현생 인류)였다.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승리자들은 종의 다양성을 축소하고,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줄이고, 삶을 전반적으로 균질화한다. 균질화된 세상은 이전보다 무미건조해지거나 훨씬 위험해진다.
'유전자 스와핑과 바이러스 섹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생물학적 시한폭탄'에 대한 이야기다. 세계화로 이동이 급속하게 늘어난 인류 덕분에 온갖 미생물 침입자들이 세계 곳곳으로 파고들고 있다는 데 대한 경고다. 침입자들은 경제파괴분자일 수도 있고, 살인마일 수도 있다. 사스처럼 막대한 돈(500억달러)을 먹는 놈일 수도 있다.
지은이는 생물학적 침입을 줄이기 위해, 무역을 책임감 있게 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능한 친숙한 영역에 머물 것을 권고하며 자신의 영역 이외의 영역으로 나가기 전에 자동차와 신발을 깨끗이 씻으라고 당부한다.
지은이 앤드류 니키포룩은 기자 출신으로 전염병, 페스트, 기아, 재앙 등과 관련한 연구를 하며 세 권의 책을 펴냈다. 447쪽, 1만8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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