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두 분의 어머니가 계신다, 한 분은 나를 낳아준 어머니고 또 한 분은 남편을 낳아준 어머니시다. 바람막이 역할을 하던 아버님들은 딴 세상으로 주소를 옮겨 떠나신 지 오래다. 고향집 우물가에 핀 모란꽃을 보며 환하게 웃던 어머니와 놀이공원 청룡열차에 씩씩하게 오르던 어머니도 세월이 주는 선물 같은 하얀 눈을 머리에 이셨다. 팔순의 연세에 접어드셨어도 여전히 따로 살길 고집하신다.
친어머니를 나는 '엄마'라 부른다. 내가 아이를 낳은 후 엄마에 대한 호칭을 바꾸고 싶어 넌지시 물었더니 한마디로 거절하셨다. 아들들이 존칭을 쓰고부터 어딘지 멀게 느껴진다며 딸까지 그러면 섭섭할 것 같다 하셨다. 고명딸을 향한 엄마의 내리사랑 덕분에 나는 아직 엄마 품에선 불혹을 넘긴 어리광쟁이가 된다. 내 영원한 마중물 같은 엄마는 식구들을 위한 기도와 운동으로 하루를 소일하신다.
시어머니를 나는 '어무이'라 부르는데 무척 활동적인 분이시다. 약수터 가는 길에 텃밭을 일궈 갖가지 푸성귀를 가꿔 이웃이며 내게 나눠 주신다. 동네 경로당에선 꽤 어른에 속하지만 부지런히 밥 당번을 도맡아 하신다. 재봉틀 앞에 돋보기를 끼고 앉아 손자 옷도 손질하고 갑자기 생각났다며 며느리 생일도 챙겨주시는 살뜰한 성품이다. 내가 게으름 피우느라 한동안 어무이 댁을 들르지 않으면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먹을거리를 가득 이고 아들네로 오신다.
두 분 어머니는 식성이 닮았는데 군고구마와 잡채를 특히 잘 드신다. 정성으로 준비해 따뜻할 때 가져가면 고마워하시는 빛이 얼굴에 가득하다. 그럴 땐 내 마음도 덩달아 밝아져 자꾸만 무얼 해다 드리고 싶어진다. 두 분은 이제 세상을 보는 창이 제 기능을 잃어 가는지 약간의 백내장 증세가 있고 한 쪽 무릎이 닳아 소리가 나는 관절염을 앓으신다. 눈에 좋다는 영양제와 뼈에 도움되는 약제를 구해드리면 무척 좋아하신다. 이런 사소한 것들로 인해 나는 두 분 어머니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안다고 착각하고 지냈다. 철없어 보이던 아들 녀석이 나에게 귀띔해 주기 전에는.
어머니 댁에 들를 때마다 보는 이 없는 텔레비전은 저 혼자 켜져 있곤 했다. 난방비조차 아끼느라 전기요를 사용하는 어른들이 텔레비전을 끄는 일은 거의 없었다. 관심도 없는 홈쇼핑 채널을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는 할머니께 손자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리 대답하셨다 한다. "사람이 그리버서 안 그카나."
덩그러니 빈집이 적적해 수런대는 사람 소리를 들으며 위안을 삼는다는 걸 나는 알지 못했었다. 혼자 먹는 밥이 모래알 씹는 것 같아 켜기만 하면 사람이 나오는 텔레비전 앞에 쪼그려 앉아 수저를 든다는 걸 지금껏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아! 나는 언제쯤 철이 들 것인가.
박 월 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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