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水害 속 골프 나들이

한 팀이 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장례 행렬이 골프장을 가로질러 갔다. 라운딩하던 한 사람이 모자를 벗어 장례 행렬에 묵념을 보냈다. "고인을 잘 아는 모양이지?" 친구가 물었다. "이 사람, 그래도 와이프 마지막 가는 길인데 조의는 표해야 하지 않겠나." 한때 골프광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고전 유머다. 여성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골프의 중독성은 이처럼 강하다.

수십 년 전 골프 치기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을 때, 보기플레이(90타) 언더를 친다고 하면 '아파트 1채 팔아먹었네' 하는 반응이 돌아온다. 싱글 친다고 하면 당연히 '아파트 2채 매각' 정도로 인식된다. 그 많은 스포츠 중에 유독 골프가 문제시되는 것도 '미치지 않으면 늘지 않는다'는 골프의 속성 때문이다.

이번에는 대구시에서 골프로 인해 문제가 터졌다. 북구 노곡동 일대 가옥 44채가 침수돼 수해 복구에 자원봉사자와 공무원 1천 명이 땀을 흘리던 그날, 시 국장급 인사 4명과 시의원들이 골프를 쳤다는 것이다. 천안함 사태 이후 공직 사회에서는 공공연히 골프 자제 분위기가 조성돼 있고, 지난 4월에는 '스폰서 검사' 사건을 계기로 검사들에게도 룸살롱 출입과 골프 금지령이 내려진 상태가 아닌가.

물론 공직자들에게 특별한 이유 없이 골프 금지를 강요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번 대구시 고위공무원 골프 사건도 수해 때가 아니라면 별 문제가 없다. 답은 간단하다. 공직자는 공(公)과 사(私)를 분명히 하면 된다. 천재지변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뛰어가야 할 공무원이, 게다가 보직 변경된 지 며칠 되지 않아 업무 파악도 제대로 안 됐을 고위 공직자가 골프장을 드나들었으니 시민들의 시선이 고울 리 있겠는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골프 금지령은 있지만 골프 해제령은 없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해제한다는 명령이 없으니 공무원들은 눈치를 보다 유야무야해지면 슬슬 다시 시작하는 것이 관례처럼 돼 있다. 때를 잘못 만나 발각되면 호된 곤욕을 치르기 일쑤지만 금지령은 시간이 지나면서 효력을 잃고 만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강확립 차원에서 공직자 골프금지령이 내려진 것이 어디 한 두번인가. 그러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그날 "의원님, 오늘은 시민들이 물난리로 고통을 겪고 있으니 다음에 치시죠" 이렇게 제안한 국장이 한 명도 없었단 말인가. 묻고 싶다.

윤주태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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