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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아버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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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버지의 꿈이었지 우리 꿈은 아니에요. 그러니 그 이야기는 그만하시고 저희가 찾은 길을 행복하게 지켜 봐 주세요." 오랜 논쟁 끝에 아버지는 굳게 다문 입을 열었다. "그게 너희들의 꿈이었듯이 나는 자식 하나 공무원 만드는 게 꿈이었다. 너희가 행복해한다면 그걸로 된 것이지만 내가 가졌던 꿈마저 부정하지 마라."

고(故) 박정희 대통령 시절, 공장을 하신 아버지에게 공직이 갖는 의미는 힘과 권력의 상징이었을 것이지만 명절이면 되풀이되는 케케묵은 공무원 이야기는 우리를 지겹고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그때서야 처음으로 아버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가슴속으로 쓰라리게 파고들었다.

아버지는 가난한 시골에서 분에 맞지 않게 자식들을 서울과 대구의 중'고등학교에 보냈다. 아버지는 일류 대학의 커트라인을 꿰고 있었고 아들들은 경찰대학의 꿈에 시달렸다. 하지만 공부를 잘하던 아들들은 그 뜻에 따르지 않고 일반 대학으로 진학했고 마지막 남은 아들마저 그 뜻을 달리했을 때 아버지의 땀과 꿈도 종결되었다.

피천득 님의 '은전 한 닢'에는 늙은 거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 푼 두 푼 얻은 돈을 모아 바꾸기를 여섯 번, 겨우 은전 한 닢을 갖게 된 그에게 왜 그렇게 애를 써서 그 돈을 만들었는지, 그 돈으로 무얼 하려는지 묻자 그는 대답한다. "그저 이 돈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의 꿈은 은전 한 닢의 염원과 같았을 것이다. 은전 한 닢보다 쇠고기 한 근이 더 낫지 않으냐고 반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듯, 아버지에게 우리의 선택에 대해 온전한 만족을 바란다는 것은 맞지 않을 것이다. 왜 아버지가 그토록 그걸 원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리고 그 뜻에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 한 번도 죄스러운 마음을 갖지는 않았지만, 지금껏 그 이야기를 시대착오적인 촌로의 답답한 완고함으로 치부해 버린 것은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그것은 아버지의 꿈이었다. 살아가는 힘이었고, 자부심이었고, 영영 좌절된 꿈에 대한 지독한 안타까움이었다.

중학교를 중퇴하여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버지는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낸 이가 있으면 찾아가 어떻게 공부를 시키면 되는지 가르쳐 달라고 했다. 자식들에게 해가 간다고 술자리에선 한 번도 취하지 않았다. 마음이 약해진다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지 않았다. 십 년 된 중고 픽업에 농업용 기름을 넣고 달리며 사철 내내 홍수와 가뭄과 싸웠다. 고장 난 스프링클러를 고치는 동안 몸에서는 한 됫박의 소금이 매일 빠져나갔다. 주전자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켤 때마다 아버지는 말씀하시곤 했다. "계희야, 입안에서 단내가 난다."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온몸에 단내를 풀풀 풍기면서도, 그때 아버지의 젖은 얼굴은 낮달처럼 빛났었다.

김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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