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나서는 나에게 "태평양 같은 마음 품고 돌아오시오"라고 남편이 말할 때 차마 남편 눈을 바로 보지 못했다. 시간이 나서가 아니라 시간을 억지로 내서 가는 입장이었고 함께 가지 못하고 혼자 가는 게 무엇보다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쫓기듯 살아온 건 남편도 매한가지겠지만 인생 숨고르기 하도록 특별 여행을 허락하고 받아들여준 게 너무 고맙기도 했다. '혼자 길을 떠나면 여행이지만 둘이 떠나면 관광일 뿐이다'라고 혹자는 말하지만 발목 잡는 모든 일상을 내려놓고 훌쩍 떠난다는 게 결코 쉽지는 않기에 마음이 몹시 무거웠다.
비행기가 하늘을 찢으며 헤엄칠 동안 구름 같은 나를 돌아보았다. 나름 넓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밴댕이 속이었단 말인가?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무뚝뚝한 얼굴로 맞이했던 시간과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대응했던 시간들이 스크린처럼 휘릭휘릭 지나갔다. 부끄러움이 마음을 탕탕 때렸다. 쫓기듯 일주일간의 여행사 투어를 마치고 LA에 살고 있는 지인의 집에서 일주일간 체류하게 되었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를 갖는 것'이라고 했듯이 그 집에 머물면서 한국에서 느끼지 못한 소중한 체험을 했다. 이국 땅에서 친구처럼 연인처럼 알콩달콩 살아가는 젊은 동갑내기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행복한 노래 부르는 부모 밑에 자녀들도 콧노래 따라 부르며 사는 것, 이게 참 행복이구나!'며 생활 곳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람 냄새에 매료되었다. 존중하며 서로가 성장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며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방법이 전혀 서툴러 보이지 않았다. 물론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진정으로 서로를 배려하며 사랑하는 사람 냄새에 내 몸에 돋아 있던 까칠한 가시들이 일순간 흐무러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술자리 건배 제의 중에 '해당화'라는 말이 있다. 두 가지의 뜻으로 해석이 된다. 첫째는 '해가 갈수록 당신과 화목하게', 둘째는 '해가 갈수록 당신만 보면 화가 나!'이다. 돌이켜보니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세월을 주말부부로 지냈다. 함께 지내지 못한 채 떨어져 지낸 만큼 더 열심히 사랑하고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늘 쏟아 부어야 하는 두멍이다'라고 어느 시인은 읊었다. 해가 갈수록 당신만 보면 화가 나! 이렇게 되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일상 탈출과 일상 복귀 사이에 검푸른 태평양이 넘실대며 서로를 껴안아 주고 있었다. 해가 갈수록 화목해지는 가정!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만들까?
서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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