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복잡한 지구가 재밌는 이유

우리 집엔 '엄마와의 멋진 약속'이란 제목으로 아이들과의 약속을 정해놓은 글이 거실 한쪽에 붙어있다. 일하는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있지 못하는 시간에 대한 걱정스런 마음으로 쓴 내용인지라 학습에 대한 부분은 잘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매일매일 최고로 잘 지키는 대목이 있다. 바로 '행복한 마음으로 엄마 기다리기'다.

나 역시 워킹맘으로서 하루 동안의 남은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기 위해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들도 나를 기다리느라 수시로 눈을 비빈다. 아마도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지 싶다. 현관에 들어서면 세 아이들 모두가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맞이한다.

간단명료하게 끝나는 짧은 인사에도 들어서는 엄마의 모습이 반가운 게 역력히 느껴지고 인사 대신 숨바꼭질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난 갑자기 술래가 되어 아이들을 만난다. 숨어서 나를 놀래킬 때도 난 아주 자연스럽게 깜짝 놀라준다. 역시 우리 아이들은 행복한 마음으로 엄마 기다리기를 최고로 잘한다.

급하게 차린 식탁에서 밥을 먹을라치면 오늘 하루 자신의 상황을 먼저 얘기하려고 아이들의 눈과 입술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순서대로 얘기하라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잊어버렸다고 투덜대기도 한다. 이렇게 세 명의 아이들 모두의 얘기를 하나씩 들어 주기만 해도 나와 아이들의 저녁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그래서 난 저녁에 집에 있을 때 시계를 잘 안 본다. 아이들에게도 하루 동안 일어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 소중한 시간은 내게 지금 내 아이가 가진 생각을 가장 빨리 알아차릴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기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요즘의 나는 일에 있어서도 가장 바쁘고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어서 우리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도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피곤하다는 말 한마디에 내 어깨를 주물러주는 막내의 솜씨가 예전과 달리 시원해짐을 느끼는 건 아이들도 그만큼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아이들이 자신의 일과에 지쳐 엄마를 찾을 시간도 없을 시기가 오기 전에 좀 더 많이 부대껴야겠다.

책을 읽다가 아이보다 먼저 잠이 드는 나는 분명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엄마다. 일 때문에 지쳤다가도 애들 땜에 웃고, 사는 게 이런 거지 싶다.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으려 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노는 게 어떨는지….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명한 걸그룹은 노래 가사를 통해 이 복잡한 지구가 재밌는 이유는 바로 '너'라고, '힘내'라고 계속 외친다. 나를 비롯한 모든 워킹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김 건 이 패션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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