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논쟁과 토론이 서툴다고 한다. 실제로 토론이나 대화를 할 때도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화'(和)를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자기주장을 자제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그래서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말하지 않고, 마음속에 꾹 눌러 놓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미루어 짐작하는 문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끼리도 상대방의 생각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같은 일본인조차 알 수 없으니, 외국인이 일본인을 외계인처럼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한국인은 감정 표현에 능숙하다. 즐거울 때는 큰 소리로 웃고, 슬플 때에는 목 놓아 운다. 길에서 말다툼하는 사람들도 가끔 보았지만, 거칠게 자기주장을 하면서도 뒤끝이 없는 한국인의 자기표현을 나는 상쾌하게 생각한다.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표현할 수 있는 한국인은, 일본인과 달리 대화와 논쟁도 분명히 잘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토론 장면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던 한국 대학에서 종종 토론 수업을 했다. 활발하게 다양한 의견이 난무할 것이라 예상했으나, 모두가 얌전하게 굳어 있었다.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모난 돌이 정 맞는' 사회가 아닐까 생각했다. 주위의 시선을 살피고, 튀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학생들의 상호 시선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고 적극적인 토론을 피하려고 하는 그들의 모습은 내 이미지 속의 상쾌한 한국인과는 크게 달랐다.
토론에 익숙하지 않게 된 것은 교육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일본의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은 '1+1=2'와 같은 틀에 박힌 것이었다. 문제에는 반드시 정답이 하나만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수가 두려워 아무 대답을 하지 않는 학생이 되어 버린다. 한국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고교 시절 나는 수학 시간이 두려웠다. 모르는 문제를 지적받았을 때 "모릅니다"라고 해도 용납되지 않았고, 정답을 맞힐 때까지 선 채로 몇 번이고 다시 문제를 풀어야 했다. 주위 학생들의 한숨소리를 들으면서 나 때문에 수업 시간이 허비되고 있다는 압박감을 견뎌야했다. 그때 선 채 필사적으로 정답을 찾아서 답해야 했던 의미를 지금도 모르겠다.
최근 일본에서는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산델(Michael J. Sandel)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공개 강의가 인기다. NHK는 몇 번이나 재방송을 하고 서점에도 그의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산델 교수는 일본인에게 대화식 강의의 표본을 보여 줬다. 그의 강의는 매회 1천200여 명의 학생을 상대로 큰 강당에서 이루어진다. 학생들 개개인이 스스로 문제를 생각하게 하고,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면서 학생들과 의견을 교환한다. 일본에서는 지금 산델 교수의 수업을 통해 지금까지의 교육에 무엇이 부족했는가를 찾기 시작했다.
산델 교수는 자기 자신의 철학으로 상대와 토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가르쳐 주었다. 틀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일본 사회에서는 문제의 본질을 자기 스스로 사유하는 능력까지 잃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최근 일본 정계에는 자기의 주장이 '문제 발언'이 될까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정치인이 늘고 있다. 정치인조차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내의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대책 마련을 위한 논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인은 국제사회에서 신용을 잃고 소외되어 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문제의 정답은 하나만이 아니며,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자기 삶의 의미와 가치관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고 그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인터넷에서는 익명으로 활발한 의견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신의 모습과 삶을 드러내면서 하는 진정한 토론이 필요하다.
요코야마 유카(도호쿠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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