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앞산 야간산행] 별 쏟아지는 밤, 발아래 야경에 취해 夜~好!

'밤 마실 다니지 마라.'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밤늦게 어울려 놀면 어김없이 듣던 어른들의 애정 어린 잔소리(?)였다. 조명 시설이 잘 발달되지 않았고, 위험한 동물들이 많았던 그 시절. 밤은 인간의 활동을 허락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더구나 밤에 산에 올라갔다가는 '위험하고 보이지도 않는 산길을 왜 오르느냐'고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그러나 밤에 걷는다는 것은 참 매력적이다. 달빛이 그윽하고 별이 쏟아지는 밤, 혼자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걸을 수도 있고, 직장 동료나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한다면 친목을 다지기에 이만한 것도 없다. 또 도심 근방의 길은 달빛이 없어도 크게 어둡지 않다. 몇 가지 안전 수칙만 잘 지킨다면 야간 산행은 바쁜 현대인들이 즐길 수 있는 훌륭한 도심의 심야 레저가 된다.

5일 위험하지만 그 이상의 매력을 지닌 야간 산행에 도전했다. 도심에서 야간 산행을 즐기기 위해 고려해야 할 조건은 시간과 장소. 두세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어야 하는 만큼 도심과 가까운 곳이 제격. 그래서 대구 앞산을 선택했다. 앞산은 거리가 가깝고 적당한 높이의 다양한 등산로가 있어 시민들이 야간 산행을 즐기기에 '딱' 이다. 대한산악연맹 대구광역시연맹 회원들이 길을 안내했다.

야간 산행으로는 좀 이른 시간인 오후 7시 30분쯤 대덕식당 입구 집결지에 도착했다. 처음 만난 이들과 반갑게 악수했다. 전날 대구도심에 멧돼지가 출몰했다는 소식이 화제였다. 한 회원이 '사살된 멧돼지의 가족들이 복수를 위해 앞산에 몰려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출발도 전에 긴장이 된다. 도심에 근접한 산이라고 만만히 봐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경고 같았다.

간단한 준비 운동을 마치고 드디어 산 속으로 들어섰다. 체육공원까지는 조명 시설이 잘 되어 있어 수월하게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을 지나자 숲이 차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생소한 야간 산행이라 그런지 발을 헛디디거나 나뭇가지에 옷이 걸리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헤드랜턴 불빛은 흔들리고 묘한 긴장감 속에서 한땀 한땀 바느질을 하듯 발걸음을 옮겼다. 야간 산행의 묘미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일부러 난코스를 택한 조양호 대구광역시 등산학교 이사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허덕이며 어둠 속을 오르고 또 올랐다. 30여 분쯤 올랐을까. 안일사에 도착했다. 잠시 동안의 휴식. 발 아래 펼쳐지는 대구시의 야경이 아름답다. 준비한 간식으로 조촐한 한밤의 파티를 열었다. 잠시 몸을 쉬고는 다시 행군이 시작됐다. 쉬다가 다시 산에 오르려니 몸이 거부한다. 만만하고 푸근해 보였던 앞산이었지만 밤이 되자 제법 매서운 산으로 돌변했다. 역시 산은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숨을 헐떡이며 '어디까지 가는 거야' 생각하며 슬슬 지쳐갈 때쯤 드디어 목적지인 해골바위에 도착했다. 앞산에서 가장 전망이 좋다는 곳. 해골바위 정상에 서자 매서운 바람이 일행을 맞는다. 바위에 앉아 도심을 내려다 보니 눈부신 야경이 펼쳐졌다. 별빛과 불빛들이 하나둘 모여 거대한 점묘화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도심이 만들어내는 각종 잡음들이 공명 현상을 일으켜 저음으로 웅웅거렸다. 눈과 귀가 동시에 즐겁다. 이게 바로 야간산행의 묘미가 아닐까.

짧은 휴식을 끝내고 하산을 시작했다. 100여m 되는 높이의 가파른 암벽을 밧줄에 의지해 내려가야 했다. 조심 또 조심. 잔뜩 긴장하고 내려가는데, 어두워 밑이 안 보이니 오히려 겁이 덜 난다. 처음 집결지인 대덕식당 입구로 내려왔다. 멋진 산행의 마무리. 하산주가 이어졌다. 산행에서 못다 한 수다가 푸짐하게 펼쳐졌다.

"도심 인근에 야간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산이 있다니 대구는 분명 축복받은 도시다." "대구의 보물인 산들을 자연 상태로 잘 보전해야 한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대구 야간 산행 코스(대구산악연맹 부설 대구광역시 등산학교 추천)

지역 코스 소요시간 거리

앞산(매자골) 대구시청소년수련원~대덕산~매자골 2시간 30분 4.5㎞

앞산(안지랑골) 대덕식당 건너~안일사~마천각~산악인쉼터 2시간 30분 3.5㎞

앞산(고산골) 상동교~철탑~깔딱고개~산성산 정상~체육공원~고산골 3시간 4㎞

성서 와룡산 선원초교~팔각정~헬기장~용머리 2시간 40분 3.4㎞

칠곡 함지산 운암지~정상석 1시간 30분 2㎞

동구 갓바위 갓바위시설지구~갓바위 1시간 30분 2㎞

수성구 욱수골 수정사~체육시설~육각정 쉼터~욱수골 주차장 2시간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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