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는 여성정책연구원이 없다. 현재 대구의 여성정책 연구는 작년부터 대구여성가족정책연구센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 이름은 그럴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대학 연구소에 위탁, 운영되고 있는 허약하고 위태로운 기관이다. 그나마 작년과 올해 각각 다른 대학 연구소가 맡아 운영하고 있어 지속성이 기본 조건인 연구기관으로서의 기능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다양한 분야의 정책을 다루고 분야별로 심화된 연구를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대구여성가족정책연구센터가 이렇게 기형적으로 존재하게 된 데에는 우여곡절이 있다. 민선자치가 본격적으로 실행된 1995년 이후 전국적으로 여성정책연구원 설립이 붐을 이뤘다. 대구시도 지역 여성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1997년에 여성정책위원회를 구성해 자문과 연구를 의뢰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 독립기관인 여성정책연구원을 설립한 것과 비교해 보면 매우 소극적인 조치였다. 2004년에는 대구경북연구원에 여성정책연구센터 설립준비단을 만든 적도 있었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대구경북연구원의 연구 부서로 양성평등연구센터를 두는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2008년에는 이 체제마저도 없어졌다가 여성계와 의회의 요구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센터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현재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중에서 여성정책 연구기관이 없는 곳은 광주와 대구뿐이다. 그러나광주는 2011년을 목표로 광주여성플라자의 건립과 함께 여성정책연구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지방선거에서 여성친화 도시정책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시장의 약속으로 200억 원이 넘는 출연금도 마련하였다. 이웃한 경상북도는 1997년에 전국 최초로 법인 형태의 독립적인 여성정책 연구기관을 설립하였으며 이를 통해 중앙 정부나 전국 단위의 단체들로부터 여성정책 추진 성과에 대한 우수한 평가를 받아냈다. 그에 비해 대구는 지역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여성 정책이 부재한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일각에서는 여성정책연구원의 설립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먼저 효율성과 비용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하는데 연구 기관의 효율성과 관련해서 대구경북연구원을 보자. 대구경북연구원은 경제자유구역과 첨단의료복합단지 지정을 위해 큰 역할을 했다. 현재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가 염원하고 있는 밀양 신공항 건설 추진도 이곳에서 몇 년에 걸친 연구를 바탕으로 가시화된 사업이다. 이처럼 정책연구원의 좋은 사례를 직접 경험하고 있으면서 여성정책 분야에 대해 유독 효율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비용 문제도 그렇다. 제대로 된 여성정책 연구기능을 수행할 수 있으면 될 뿐 근사한 건물이나 규모가 큰 기관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또 양성 평등을 더 이상 의제로 삼을 필요가 있는지를 반문하고 이제까지 여성의 지위 향상만을 보살폈으면 그간 소홀했던 남성들에게도 관심을 가지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 지역은 여전히 여성의 특정한 역할을 강조하고 여성만의 미덕을 강요한다. 1907년 대구 여성들이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국채보상운동을 시작하며 "국가를 구하는 일에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있겠는가?"라고 선언했지만 지역사회의 양성 평등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대구 여성들은 지역사회의 위기 때마다 묵묵히 현장에 달려가 봉사하며 지역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다른 지역은 여성 친화적으로 변화하는데 대구만 계속 여성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헌신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여성정책연구원은 여성의 침묵을 소리로 울려 잠재된 대구 여성의 능력을 스스로 확인하게 하고 지역 발전을 견인하는 자원이 되게 할 것이다. 여성정책연구원이 지역 안팎의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 행정기관의 두뇌로서, 여성 운동의 파트너로서, 취약계층의 심장으로서 모두가 행복한 대구를 만들 정책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구는 더 이상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강세영(대구여성가족정책연구센터장'계명대 여성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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