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탄] 서민 겨우살이 버팀목

연탄은 아련한 옛 추억의 빛바랜 사진이다. 1970년대만 해도 대다수 국민들이 연탄의 온기에 의지해 겨울을 났다. 연탄불에 국자를 올려놓고 설탕을 녹여서 '뽑기'(달고네)를 만들어 먹다 국자를 태우기도 하고 새벽에 일어나 연탄불을 갈아 끼우느라 고생했던 추억, 연탄가스 에 한번쯤은 중독돼 동치미 국물을 마셨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어려웠지만 지금보다 온기 가득한 그 시절의 연탄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어려워진 경제 한파로 인해 서민 가계부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한 푼이라도 줄여보려는 민초들의 노력이 여기저기서 눈물겹게 이어지고 있다. 없는 사람들에겐 여름보다 겨울나기가 더 어렵다. 마른 수건을 짜내듯 허리띠를 졸라매도 난방비 부담이 벅차기 때문이다. 서민들의 힘겨운 삶은 난방 연료를 연탄으로 바꾸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고유가에다 불확실한 경기가 지속되면서 기름보일러를 연탄보일러로 바꾸고 음식점과 공장 등의 사무실에서도 연탄난로를 들여놓아 추억을 자극하고 있다. 반갑다 연탄아! 연탄 그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봤다.

◆동구 율암동 연탄 생산장

겨울의 찬바람이 연탄을 손짓하고 있었다. 9일 오전 대구 동구 율암동 대영연탄 앞마당. 이른 아침부터 시커먼 연탄을 실어 나를 차량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4개의 연탄 배출구에서 숨 가쁘게 연탄이 쏟아졌고, 이내 1t 트럭에 실렸다. 배달 업체들은 "서민들의 겨울 연탄 수요에 맞추기 위해 부지런히 나르고 있다"며 찬바람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연탄공장을 찾는 배달차량은 하루 평균 150대. 오전 8시부터 작업에 들어가 오후 5시까지 연탄을 찾는 서민들의 수요에 맞추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예년에 비해 잦은 기습 한파가 몰려올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이달 들어 본격적으로 연탄이 출시되고 있다. 연탄공장은 예년보다 일찍 가동에 들어갔고 서민들의 연탄 주문이 쇄도하면서 배달 업체들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때이른 추위가 몰려 왔던 10월에는 정부 역시 10월 27일부터 서민들의 겨우살이 버팀목인 연탄쿠폰 지원을 시작했다.

대구경북 유일의 연탄 생산장이 있는 대구 동구 율암동 일대. 3곳의 연탄공장(대영연탄, 태영씨엔이, 한성연탄)은 이날 하루 30만 장의 연탄을 팔았다. 잦은 기습한파와 월동 대비를 위해 지난달에는 하루 30만 장 연탄 생산을 돌파했으며 이달 들어서는 26~27만 장 정도로 조금 줄었다. 한편 대구연료공업협동조합 이기호 상무는 "연탄 수요가 늘고는 있지만 예년과 비교하면 날씨가 덜 추워 올해는 5%정도 수요가 감소할 것 같다"며 "내년 3월까지 2개월 분량의 4만t 정도를 비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연탄 1장의 공장도 가격은 373원. 연탄을 부지런히 싣던 30년 경력의 배달 업자는 "장당 400원에 배달해달라는 사람도 있는데 이 가격은 도저히 맞출 수 없다"며 "소방도로에 접해 있고 1층에 있어 배달하기 쉬운 곳은 장당 430원에 배달하지만 거리가 먼 곳이나 배달이 까다로운 곳은 장당 500원 이상도 받는다"고 했다.

배달 업체들은 대구 지역뿐 아니라 고령'성주'군위 등지와 경남 거창'창녕'합천까지도 연탄을 배달한다. 업체 관계자는 "연탄을 주문하는 사람들은 꼭두새벽부터 전화를 해 배달을 요구 한다"며 "이에 맞춰 전날 미리 연탄을 실어놓아 수요에 대비 한다"고 귀띔했다.

연탄을 받아든 서민들의 마음은 홀가분하다. 연탄 3장이면 하루 난방은 끄떡없다. 이날 연탄 300장을 들인 이금자(66'여'대구 동구 서호동) 씨는 "잠깐 춥다 말겠지 싶어 전기장판으로 대신했는데 빨리 연탄들이길 잘했다"며 "내년 2월쯤에 한 번 더 연탄을 들여야 하지만 창고에 가득 찬 연탄을 보니 가슴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10월 대구시를 통해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소외계층에 연탄쿠폰을 각 구'군으로 전달해 지난달부터 수혜자들이 사용에 들어갔다.

대구시청 에너지관리팀 이승섭 담당은 "연탄보일러 사용 가구가 가장 많은 중구에 쿠폰이 제일 많이 지급됐다"며 "쿠폰당 16만9천원으로 340장 분량의 연탄을 겨우내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꽃 농원

북구 연경동에서 20여 년간 꽃 농원을 하고 있는 이성엽(50) 씨는 겨울이 와도 걱정이 없다. 일반 업체들이 비싼 기름 값으로 난방비 부담에 허덕일 때 이 씨는 연탄난로를 들여놨기 때문이다. 830㎡(150평)의 농원에 3구3탄(연탄 9장 들어가는 것) 연탄난로 8개로 각종 꽃을 재배하고 있다. 연탄 장당 가격이 500원이므로 하루 난방비로 3만6천원이면 충분하다. 기름보일러를 사용했을 때 한 달 난방비로 450여 만원 드는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절감할 수 있다. 게다가 난로 위에 큰 주전자를 올려놓고 차를 끓여 손님들에게 제공하거나 고구마를 구워 나눠 먹는 재미도 쏠쏠해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 식당

겨울이 되면 연탄이 더욱 반가운 곳은 식당이다. 칠성시장 족발골목에 가면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돼지석쇠불고기 식당 2곳이 있다. 하루 40㎏ 정도의 돼지고기를 소비하는 이곳에서 하루 연탄 소비량은 15장 정도(연탄 장당 500원)로 연료비가 7천500원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 연탄은 저렴한 연료비뿐만 아니라 연탄불로 구워낸 돼지불고기는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 있다. 은근한 연탄불로 구워 기름기를 쫙 빼낸 돼지불고기는 맛이 질리지 않고 연해 입맛을 당기게 한다. 돼지불고기 가격도 1인 분에 4천원, 소주 1병에 2천원을 받기 때문에 1만원이면 두 사람의 배를 충족시킬 수 있다.

수성구 만촌2동에 가면 구수한 맛으로 유명한 돼지국밥집들이 즐비해 있다. 이곳에서도 기름보일러 대신 연탄난로를 사용해 연료비 절감은 물론 맛있는 국밥을 손님들에게 선사한다. 하루에 연탄 5장이면 영업은 물론이고 물도 데워 쓰며 식당 내 온기도 유지할 수 있는 '일석삼조'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이곳 식당 주인들은 "겨울이 오면 연료비 때문에 고민이 많은데 연탄이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달서구 감삼동에서 18평짜리 식당을 하는 강은숙(43) 씨는 올해 치솟는 기름 값 때문에 기름보일러를 연탄난로로 바꿨다. 기름보일러를 사용했던 지난해 한 달 연료비가 20만 원 정도 들었는데 연탄난로로 교체한 뒤에는 한 달 연료비로 4만5천원이 들어 4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

현재 대구시내 연탄을 이용한 대표적인 구이요리는 달서구 감삼동 구이식당 골목, 북성로 돼지불고기 골목과 대곡동 일부 지역, 다사면 일대, 대구 프린스호텔 뒷골목 등 불황 여파를 타고 동네 구석구석으로 침투하고 있다.

◆ 칠성시장 전자상가

대구 북구 칠성시장 주변의 전자상가에 가면 연탄보일러와 연탄난로를 판매하는 가게들이 몰려 있다. 각종 주방제품 등 생활용품을 가득 진열해놓은 이곳에 연탄보일러와 연탄난로가 가게 맨 앞에 차지해 겨울철 연탄의 수요를 손짓하고 있다. 고유가 시대에 맞춰 기름보일러, 기름난로 대신 연탄보일러, 연탄난로를 선호하는 최근의 세태를 반영한 것.

이곳 연탄난로의 경우 1구3탄(구멍 1개에 연탄 3장 들어가는 것)이 3만5천원, 2구6탄(구멍 2개에 연탄 6개 들어가는 것)이 4만~5만원, 3구9탄(구멍 3개에 연탄 9장 들어가는 것)이 5만~6만원 대에 판매되고 있다. 연탄 2개 정도면 하루 정도 땔 수 있기 때문에 기름난로에 비하면 매우 싸다. 칠성시장 전자상가에서 30년째 연탄난로를 판매하고 있는 김양수(53) 씨는 "불경기와 고유가 때문인지 올겨울 들어 연탄보일러, 연탄난로를 찾는 수요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중구 북성로에 가면 연탄보일러에 비해 가격도 싸고 설치도 간단한 연탄난로가 추위가 시작된 겨울철에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북성로에서 난로 도매업을 하는 한 업체 대표는 "기업체 등에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연탄난로를 많이 찾고 있다"고 귀띔했다.

전수영기자 poi2@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