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노인과 리어카/임수진

우회전을 하던 나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주차되어 있던 덤프트럭 바로 앞에 종이 박스를 높게 쌓아올린 리어카 한 대가 세워져 있다. 리어카는 2차로 차로에 사리 분별력 없는 아이처럼 방치되어 있다. 사리 분별력이 없는 어린아이를 나무랄 수 없는 것처럼 리어카를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차를 갓길에 세운 뒤 사람을 찾았다. 어두컴컴한 주택가 공터에서 두 팔 가득 박스를 안은 노인이 나타났다. 언뜻 보면 박스를 들고 오는 게 노인이 아니라 박스에 노인이 얹혀서 오는 것 같다. 노인도 박스도 힘겨워 보인다. 나는 기다렸다. 그곳에 리어카와 함께 있는 건 아주 위험한 일이라는 걸 말해 주고 싶었다.

노인은 리어카에 가득 실린 폐품 위에 박스 몇 개를 더 올린다. 위태위태하다. 리어카가 숨을 헐떡인다. "이렇게 종이가 많이 나오는 날은 일을 해도 하나도 힘이 안 들어." 노인의 입이 벌어진다. "돈은 무슨 돈, 몇 푼이나 된다고? 일하는 게 즐거운 거지." 내 질문에 답하는 노인의 입속은 훤했다. 발음이 샌다.

"죽지 못해" 혹은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라는 답변이 나올 줄 알았던 노인의 입에서 뜻밖에도 노동의 신성함이 튀어나온다. 노인의 욕심은 크지 않았다. 노동 대상인 폐지를 오늘처럼 많이 만나기만 하면 되었다. 그것만 충분하면 자신의 노동과 노동 도구인 리어카를 이용하여 생산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대규모 공장에서만 생산품이 만들어져 나오는 게 아니었다. 한적한 주택가 골목에서도 그곳을 생산 현장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자본가 계급 입장에서 보면 하잘것없는 소일거리 정도로 여겨지겠지만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노동 과정을 즐기며 거기서 발생한 이윤으로 라면을 사고 양말을 사고 장갑을 사는 사람도 있다.

노인의 꿈은 뭘까. 은근슬쩍 내비친 말에 의하면 죽는 날까지 자생적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거다.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번 돈을 쓸 때 가슴이 떨린다고 한다. '내 새끼가 어떻게 번 돈인데' 싶어 주머니 속에서 쉽게 꺼내지 못한다고 한다.

밤의 신작로를 노인과 리어카가 간다. 삐걱삐걱 걸어간다. 노인이 앞장서고 리어카가 뒤를 따른다. 뒤에서 보면 리어카 혼자 굴러가는 것 같다. 노인인들 고기를 씹어 먹을 수 있는 이를 해 넣고 싶은 마음이 왜 없을까만, 리어카가 바퀴 달린 것들의 숙명을 받아들여 구르면서 닳아가고 있는 것처럼, 노인도 그렇게 고요히 낡아가고 있다. 12월의 밤바람은 올해도 여전히 차다.

임수진(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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