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許蔿 손녀의 눈물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이 집, 저 집 옮겨다닐 수도 없고 해서 다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갑니다. 그동안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려고도 했으며, 구미의 할아버지를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어요."

천신만고, 우여곡절 끝에 할아버지의 나라인 대한민국의 국적을 얻은 지 한 달 만에 다시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야만 하는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1855~1908년) 선생의 유일한 손녀 허로자(87) 할머니. 우리말이 익숙하지 않고 어눌한 탓일까. 아니면 그간의 회한(悔恨) 때문일까. 목이 메어 말을 잘 잇지 못하고 끊기곤 했다. 국적 취득 과정의 사연은 할머니의 9촌 조카인 허벽 씨를 통해서 겨우 퍼즐 게임처럼 맞출 수 있었다.

허 할머니는 3'1운동 90주년과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암살 100주년이던 2009년 9월 28일 허위 선생의 생가 부근 동산에 서거 100년이 넘어서 마련된 왕산기념관 개관 때 구미를 찾았다.(본지 2009년 10월 10일자 야고부 보도) 허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살던 땅에 뼈를 묻고 싶다'고 했고, 그 소원을 풀기 위한 국적 회복의 '기나긴 여정'이 시작됐다.

할아버지 나라의 국적 취득 과정은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허울 좋은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옛소련, 동토(凍土)에서 얻은 동상으로 다리를 절게 된 여든 넘은 노인이 감당하기엔 힘겹기만 했다.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을 오가야 했고, 잠자리가 마땅찮아 여관과 친인척 집을 전전했다. 아흔을 바라보는 노인에겐 가혹한 고생 끝에 할머니는 올 1월 15일 한국 국적을 얻었다.

불편한 몸에 관련 기관들을 방문하느라 국적 신청부터 꼬박 1년 3개월이나 걸린 셈이다. 국가의 많지 않은 지원에 의지하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처럼 허 할머니 역시 돈이 문제였다. 국적은 얻었지만 마땅히 살 곳이 없어 정부 지원 거처가 마련될 때까지 우즈베키스탄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 사정이다. 그래서 비행기표를 예약했다고 한다.

다시 맞게 되는 국경일이자 공휴일인 3'1절을 앞두고 조국을 떠나야만 하는 허 할머니. 1949년 3'1절 국경일 법 제정이 올해로 62년을 맞았다. 해마다 이날이 되면 전국은 태극기 물결이다. 그리고 1919년 3'1 만세운동과 일제에 항거한 독립 의사'열사'운동가들을 기린다. 하지만 국경일의 연륜이 쌓여가는 만큼이나 선열에 대한 우리 의식이 성숙됐다고 할 수 있을지 부끄러울 뿐이다.

정인열 중부지역본부장 oxen@msnet.co.kr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19일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55%로 직전 조사 대비 1% 하락했으며, 부정 평가는 36%로 2% 증가했다. 긍정적...
금과 은 관련 상장지수상품(ETP) 수익률이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과 실물시장 공급 부족으로 급등하며, 국내 'KODEX 은선물 ET...
방송인 박나래와 관련된 '주사이모' 불법 의료행위 논란이 확산되며, 유튜버 입짧은햇님이 직접 시인하고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입짧은햇님은 '주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